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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Feb 04. 2017

꽃보다 아름다운

베트남 출장기 #2.

오랜만에 노트북을 킨 죄로-준비운동


아- 게으르다. 게을러..

책상에 붙은 사진 한 장, 그리고 내가 만난 아이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으로 내 마음은 늘 그곳에 있었지만 엉덩이가 안 붙고, 손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 이제야 노트북을 켰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때론 나를 대변하는 '나'그 자체이지만 글을 쓸 몸과 마음의 여유 조차 없었다는 것은 좀 반성하길 바란다.(스스로-)

나의 시간과 공간을 더듬으며 마음을 써 내려가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늘 힐끔힐끔 기회를 노리는 저 '멍청한' '스마트'폰에게 지지 않을 테다.


내가 이러려고-!


지난밤의 악몽(노래방 아저씨의 자장가)도 어디서나 잘 자는 나의 단잠을 깨울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친절히 숙소까지 데리러 온 나의 베트남 친구들과 모닝 쌀국수 한 그릇을 했다.

하- 이맛에-

(친구들에 대한 것인지, 쌀국수에 대한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할 터이다.)


한국어 특성화 교실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 Class~ 이름하여, '배워서 남주는' Hanna's 캘리그래피!!

한글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사랑도 했던 이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 캘리그래피를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조금은 모험적일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가지는 열의가 대단했기에 나름 성공적인 모집인원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자음-모음-간단한 단어-짧은 문장-구조 및 꿀~팁 등을 한 자 한 자 가르치며 나를 향한 초롱 초롱한 눈동자에 보답하였다. 그리고는 이 날의 클래스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분, 나는 뭐든 열심히 배우면 좋은 것 같아요. 배워서 남주는 거죠.
제가 캘리를 공부해서 여러분에게 나누어준 것처럼, 여러분도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작고 긴 글씨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요. 때론 고맙고, 때론 미안하고 또 때론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오늘 수업의 실습은~ 지금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에게 줄 엽서 만들기랍니다.

그러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귀여운 꽁냥꽁냥들이 있었으니-

누가 커플 아니랄까 봐 수업시간에도 꼭~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어학과 공식 커플은 '꽃보다 은지'라는 글씨를 써서 조용히(?) 들고 있었다. 이 먼-땅을 오느라 누가 봐도 찌들어 있을 난데, '꽃보다' 아름답다니. 그 마음 자체가 이미 배워서 남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도 배워서 남주자는 나의 중요한 삶의 모토는 이렇게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풍성해질수록, 함께 하는 이들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다다익선이다.


어쩌다 어른,


신명 났던(나만?) 캘리그래피 수업이 끝나고 시장에 가서 현지식 볶음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이 친절한 친구들은 내가 망고 망고~ 노래를 부르던 것을 기억하여 숙소로 가기 전 마트에 들러주었다. 격하게 아끼는 망고, 용과, 미니 귤(?) 등을 사서 내 방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과일 파티를 열었다. (미안해- 너희들에겐 '파티'가 아니었겠지..)

곧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들인지라, 자연스레 한국의 대학생활 등에 대해 말했는데, 나의 다른 동남아 친구들이 그렇듯- 이 친구들도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모든 한국 남자들은 이민호요, 송중기인 줄 알고 있더라. 세상 어딜 가나 그냥 다 다르게 생긴 것뿐이지만, 그런 연예인분들은 그러니까 연예인이라며 아이들의 환상을 깨 주고 자연스레 청년들의 Hot Issue인 남-여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게는 아이들이 가진 한국 남자는 다 잘생기고 친절하다는 환상+베트남 문화상 친구끼리의 스킨십이 스스럼없음+아이들의 순수한 친절과 마음+애교+예쁨 등등이 매우 걱정되었다. (엄마 매의 눈 모드)

애들아, 성에 대한 생각은 너희들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먼 나라에 와서, 여러 면에서 불리한 '외국인'이 되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스스로밖에 없는 것 같아. 이 세상엔 어디나 좋은 사람도 많지만, 또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선택의 경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때에는! 네가 너를 지켜야 하는 것을 잘 기억해! 혹시 한국에 와서, 99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도 1명의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소중했던 시간들과 만남이 다 어두워져 버릴지도 모르잖아? 그러지 않기를!!
그러니- 밤 10시 이후로 '남자 선배'만나지 마. 잘생긴 준하!(수다모임의 유일한 남자) 너도 여자 조심하고.

그렇게 난 베트남에서도 조선시대,

아니 요즘은 선사시대를 넘어 쥐라기라고 칭함 받는 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어쩌다, 성교육- 아니, 보호 그리고 애정.


흩어지지 않는 언어를 위해.


열띤(?) 대화 이후, 이날 오후의 주요 일정인 한국어 강의 모니터링을 갔다. 봉사단원으로 1년간 파견되어 귀국 2개월 만을 남기고 있는 단원의 수업이었다. 한국어 교육 자격증으 내공으로 그 어려운 한국어 문법 설명을 잘 해내고 있었다. 맨 뒤에 앉아 이 더운 날, 선풍기 바람에만 의존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듣기 수업이기 때문에 한국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이 그대로 나왔고, 학생들은 '양주행으로 가는 1호선 열차를 갈아타실 분은 이번 역에서 하차하시길 바랍니다.'를 통해 여러 가지 문법과 단어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문장이 분절되었다, 단어가 하나하나 쪼개졌다, 언어가 흩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 교육이란 것이, 그리고 그것을 수업으로 '교육과정'화 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언어를 죽이는 실수를 피하기 어렵다. 나도 영어를 '언어'로 인식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십수 년간 영어라는 언어로 누군가의 삶을 알아가고, 한 도시를 알아가고, 한 나라를 알게 되는 재미를 이제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살아있는 누군가와 호흡하고 살을 부대끼며 알아가기 위한 '소통'으로서의 언어는

공중으로 흩어져 우리의 입학과 취업이란 곳에서 반짝하다 증발하는 '분절'이 아니라,

뭉치고- 또 흘러간다.
그리고 머무르며 이 삶에서 저 삶을 이어준다.


다 같이 돌자 호치민 한 바퀴-


수업에서 홀로 상념에만 빠져있었던가 싶지만, 이내 현실로 복귀해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흠흠, 나름의 프로페셔널이랄까.) 모니터링 체크표와 코멘트 작성을 끝내고 수업을 마무리하며 인사를 하는 선생님과 그녀의 제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야 제대로 봉사단원과 인사를 하고, 자연스레 이 곳에서의 활동들과 삶을 나누며 저녁을 먹으러 갔다. 늘 어딜 가나 겪어보지 않은 문화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당장에 나를 위협하며 쌩쌩 지나가는 오토바이들, 주행 방향이 존재하는지, 신호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가는 이 교통체계가 여전히 무서웠다. 고작 2일에 이 오토바이 대국을 알아가기란...

하지만, 나의 두려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국수의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그녀를 따라간 그곳에는, 오동통한 면발에 익숙한 빨간 국물 그리고 게살이 듬뿍 들어간, 게다가 가격까지 너무나도 착한 국수가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베트남에서의 1일 1 쌀국수 아니, 1일 2 국수는 늘 옳다.


배도 든든히 했겠다, 업무도 마쳤겠다, 소화는 시켜야겠다, 어차피 집 가는 차를 타러 이동은 해야겠다, 아주 많은 겸사겸사로 우리는 산보를 나섰다.

호치민에서 사실상 사람들이 꼭 들르는 랜드마크들은 거리가 가깝게 모여있기 때문에 한 번에 돌아보기 편했다. 출장 중이고, 묵었던 숙소가 외진 곳에 있던 터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엄두 없이 해가 지면 꼼짝없이 더빙된 한국 드라마가 흘러나오는 숙소에 갇혀있나 싶었더니, 어딜 가도 역시 혼자 두지는 않으시나 보다. 이렇게 늘 천사를 보내주신다.


중앙우체국_베트남의 공공기관 건물은 다 이렇게 병아리 같은 노란색이라고 한다.

호치민 노트르담 대성당, 우체국, 광장, 거리 등을 돌며 느낀 것은 어딜 가나 '호찌민'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혁명가 호찌민은 혁명운동을 통해 베트남의 독립을 주도한 베트남의 정치적, 정신적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 전쟁 중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통일되고, 보다 안정된 독립국가로서의 베트남을 보지 못하고 유언장에서 마저 자신을 장례 하느라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는 그는 실로, 베트남 혹은 적어도 호찌민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 것인지, 난세 중에 영웅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이 도시와 그 사람들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우리의 발걸음이 쉰 곳은, 호치민의 또 다른 명물 콩카페였다. (콩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동그란 콩이 아니라, 베트남 언어 cong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이며 코코넛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먹는 그 달콤함이 이 날을 더 특별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Cong이 베트남어로 '더하다'라는 의미라는데,

이 cong카페

오늘 많이 수고한 내 발과 다리에도,

색다른 공기와 소리 속에 긴장하며 설레 하고 있는 마음에도

한 템포 '쉼'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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