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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Dec 19. 2016

두렵고도 설레는 것

베트남 출장기 #1_프롤로그

8시 1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20살 이후로 매년 한 나라 이상은 밟고(?) 말겠다는 나의 어마 무시한 소망이 2016년에는 직딩의 길에 접어듦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나 싶었는데, 결국! 승리하였다.


학교 봉사활동, 기업 봉사활동, 나 홀로 배낭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비전 트립 등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출장은 나에게도 초행길이었다.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고, 누구랑 가느냐에 따라 다르고, 언제 가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당연히 다른. 이래나 저래나 결국은 언제나 '새롭다'라는 것이 나의 떠남에 대한 지론이기에, 이번 출장도 갓 아기 티를 벗어 처음 중학교라는 곳에 가는 초등학생처럼, 설레고 또 조금은 두려웠다.


머무르고 떠남 속에 두려움과 설렘을 반복하며.


Xin Chao! Vietnam.

언니? 누나?

호찌민 공항에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봐도 한눈에 이방인 티를 낸 것인지 마중 나온 학생들이 금세 나를 알아봤다. 25년 한국인인 나보다도 더 정확한 발음으로 나를 부르는 반히엔 대학 한국어학과 학생들의 환영으로 잊지 못할 12월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아니, 왜 베트남 사람들은 다 예쁘고 잘생긴 거야?

애교, 그리고 약간의 푸념 섞인 말을 내뱉으며, 날 마중 나온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와 꽃이 되었다는 여느 시인의 말처럼, 그들의 이름을 부르게 된 나에게 베트남은 더 이상 '그 베트남'이 아니었다. 이들로 인해 이제 '나의 베트남'은 한 500배쯤은 더 특별하게 느껴질 테니.(총 5명이었으니 한 명당 100배쯤이라 하겠다.)


학교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벤탄시장 근처로 이동해서 드디어 첫끼를 먹었다. 물론 첫끼가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쌀국수가 아니었다는 점은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대접하고자 현지 담당자가 결정한 식당이니 군소리 없이 잘 먹었다.(아니, 사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먹었다.)


일주일간의 일정을 다시 조율하고, 근처에서 환전을 하고 이제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분명히.. 분명히 건기라고 했는데! 요즘은 어딜 가나 이상기후가 말썽이다.

현지에서야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만, 정도껏 와야 운전을 하고 가는데, 지나치게 많이와서 하는 수 없이 벤탄시장으로 몸을 피했다. 물에 젖은 생쥐들을 살뜰히도 맞이해주는 벤탄 덕분에, 어느새 우리 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망고 스무디, 구아바 스무디를 들고 있었다.

_

우리도 외국인에게 그렇듯- 현지(?) 음식들을 잘 먹는 내가 신기했는지, 학생들이 그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러고는 그래도 부족했는지, 어떤 과일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애들아, 미안한데.. 이래 봬도 필리핀 3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다 가본 사람이야. 이런 과일음료는 캄보디아에서 매일매일 먹었다고..'

-라며 속으로 초짜 베트남 방문자의 혈기를 부려보았지만, 학생들의 반응에 호응하기 위해 모든 것이 새로운 척하느라 나름의 진땀을 뺐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까. 내 나름의 예의와 애정표현이었다고 받아주렴:)


돌아보지 마라, 제발..


비가 그치고, 우리는 2명씩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여유롭게 한 손을 놓고 뒤를 보며

누나는 몇 남 몇 녀예요?

라고 묻는, 나보다 더 한국인 같은 이 베트남 청년, 준하(한국 이름) 덕분에 나는 가뜩이나 작을 것 같은 간이 더 콩알만 해져서 왔다. 결국 본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등허리를 퍽-때리며, 으름장과 간곡한 부탁(?)을 했다.

난 120살까지 살고 싶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단 말이야. 그러니까 안. 전. 운. 전!! Okey? Please~~!


1일 1 쌀국수 공약에 실패하나 싶었는데, 드디어! 저녁으로 쌀국수 비슷한 분짜(Bun Cha)를 먹을 수 있었다. 물처럼 국수를 마시고는 금세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베트남 초보자인 나만 전전긍긍이었다. 곡예를 하고도 해맑은 우리의 준하, 내. 일. 보자.

그래, 내일 보자~

그렇게 타박타박 걸어올라 왔다.


혼자 이 넓은 침대를 써보다니, 이게 왠 호산가.

얼마 전 한국 자취방에서 백만 년 만의 스트레칭을 해보겠다며 몸을 펴다 벽에 쿵-부딪히고는,

이것이 바로 독거청년의 빈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라며 한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홀로 하얀 침대를 뒹구르르- 누비며 길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정겹던- 에너지 넘치는 더빙 드라마와, 옆집 아저씨의 노래방 소리와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에서는 일반 가정집에 노래방 기계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밤낮 가리지 않는 흥 많은 아저씨들이 계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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