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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pr 13. 2017

나도 이유가 없습니다.

베트남 출장기 #3.

사실, 나에겐 더 많은 일들과 더 많은 느낌들이 있었다.

하지만, 늘 '현재'에 충실하자는 그럴듯한 핑계로 그것들을 담아내는 것을 미뤄왔던 베트남 출장기.

그러나 마무리는 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조금은 급히- 베트남에서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래, 뭐든 끝은 봐야지.


물고기를 잡는 법도 아닌- 요리해 줄 사람.


오늘은 출장 일정 중 가장 기다리던 현지 마을 모니터링 날이었다. 호치민을 중심을 조금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흙길에, 캄보디아에서 고작 반년 간으로 다져진(?) 농사 감각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행길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환경(예를 들면, '쓰레기산'과 같은 덤프 사이트)에 가도 결국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었기에- 잘 웃고, 잘 뛰고 그랬더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 혹은 현지 멘토와 나누어 먹을 과일을 양손 가득 들고 첫 번째 마을에 들어갔다.

동네를 휘저으며 달려 다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나이였지만, 응우웬은 그 작은 손으로 노를 젓는 것에 더 숙련돼 보였다. 응우웬의 아버지는 일을 나가셔서 밤늦게 들어오시기 때문에, 남겨진 응우웬과 여동생은 먹을 것이 없을 땐 이렇게 집 옆의 물가에서 고기를 잡았다. 해맑게 노를 젓는 아이들의 모습에 현지 스텝이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애들이 수영을 잘 하겠죠? 아이들이 혹시 빠져도 물이 깊진 않나요?
      수영을 하지는 못하지만, 빠진 적이 없는 노련한 어부들이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기를 잡아도 요리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고기가 썩는 경우가 많아요.


어느 순간 국제개발협력, 원조의 중요 이슈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인지 모를 발전을 했다. 틀린 말이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는 물고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 보다, 그저 물고기를 맛있게 요리해주고 함께 먹을 그 누군가의 '곁'이 필요하진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유가 없다니요.


발걸음이 무거워진 것은 강 위에 있는 환한 아이의 미소보다, 그 '곁'이 여전히 비워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 마을을 들어갔다 나올 때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이길 바라는-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예상한 대로,

다음 마을에서 나는 결국 벽 뒤에 숨어 끅끅거리며 울어야 했다.


갓난아이.

도대체 나온 지 한 달이나 돼 보이는 저 아이는 왜 여기 있는 거죠?


No reason

현지 스태프의 대답에 결국 나는 참지 못했다. 사이트에 가서 함부로 울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 것은 자칫, 마을에서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거나, 단지 동정하는 모습으로만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 앞에서 대놓고 울거나 끔찍한 마을 상황을 봐도 눈을 찡긋-코를 찡긋-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나였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빠르게 진정하고 돌아오니, 스태프가 베트남은 남자들이 외도, 도박, 술 등에 빠져 있어서 베트남의 많은 가정들이 깨어졌고, (이혼 혹은 별거) 그런데 다산의 문화가 있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버려지게 된다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내 빨간 눈시울을 알아채지 못하고 놀자고 여기저기서 뛰어왔다. 그리고 한 아이는 이제 곧 학교 갈 시간이라며 은근히 뒤에 매고 있는 가방을 자랑해 보였다.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멋진 가방을 갖게 되었지만, 공산품이 그리 튼튼하지 않은 터라 금세 찢어져 이렇게

꼬매고 다녀야 한다.


그래,
아무리 이 아이들을 돕는 손길들이
어딘가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이 가방처럼 이미 잘 뜯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뭐 어떡해.
학교는 가야지.
뜯어진 거면 꿰매어서 가야지.
또 뜯어지면?

또 꿰매면 되지.


어떤 것이 완전하게 옳은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런 것이 이 분야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가 매고 싶어 하는 저 파아란 가방을 열심히 꿰매어서 아이에게 살포시 다시 매주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 마음에도,

이유가 없다.


보통 내 여행기는 흥얼거리며 퐁. 퐁. 퐁 (퐁퐁퐁이란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걷는 가벼운 발걸음인데, 이번 글은 조금은 무거웠을지 모르겠다.


쓰다 보니 그때의 간절함이 남아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출장기간 중 아이들을 만난 모든 시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아이들과 시내로 나와 함께한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한껏 꾸미고(나 말고.. 아이들이....)

원래의 흥부자로 돌아오기도 했다는..


Epilogue.


도망치듯 글을 마무리한다.

현재라는 일상에 집중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사실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글에 담아내지 못한 많은 고마운 이들과, 행복한 순간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수줍은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다. 그래서 더 이 글을 길게 써내려 갈 수가 없었다.

생각하고 다시 생각할수록- 어쩐지 그 심연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들이 떠오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다.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을 끝까지 기억하는 일에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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