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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2. 2017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패기휴가: 미국 방랑기 1. 에필로그

 # Epilogue.


너는 혹시 신의 직장에 다니는 것이니?

어떻게 휴가를 그렇게 냈어?

너 또 이직했어?

퇴사했구나!?

너.. 부자구나!

.

.

.

 온갖 핍박(?)을 들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고,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고, 그곳에서 만날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여- 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금세 신발끈을 묶고 가방을 멘 것뿐인데, 다들 야단인 것을 보니 어쩐지 조금은 속이 상하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이상한 일이 된 것인지... 비행기 왕복을 74만 원에 결제하고, 단 돈 60만 원을 환전해서 떠난 그 길이(심지어, 10만 원을 남겨 왔다는 전설이..) 어쩐지 그 사소하고도 중요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 아니 모든 여행 욕망 쟁이(?)들을 대표하여 떠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언제부터 맡겼다고?)



# 세상에서 가장 예쁜 구글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작


 미국에 왔으니 그래도 ‘뉴욕’은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조금은 빠듯한 1박 2일의 여정을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나의 책임자(?)인 여림양이 평일에는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주일 밤 12시-즉 그다음 날이 될까 말까 하여 도착하는 1박 2일이지만 2박 3일 같은 그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시차 같은 것도 없이 전날 하루도 아주 알차게 보내며 여림양과의 뉴욕에서의 일정을 점검하고 새벽에 일어나 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터라, 개운하게 일어나 집을 나서기 30초 전에 일어난 우리의 베스트 드라이버, 드림 군의 안전한 이송(?)으로 메가버스를 탈 수 있었다.     

 유럽에서 두 달간 홀로 배낭여행을 할 적에 가장 싼 이동수단인 메가버스를 애용했었다. 그러나 어딜 가든 현지 방법으로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다니며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오롯이 느끼기 원하는, 유심 따위.. 허락하지 않는 ‘자발적 불편가’인 나에게 유일하게 인터넷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먼 길을 떠날 때였다. 보통 메가버스를 예약할 때는 인터넷으로 바로 카드 결제를 하고 그 예약 페이지를 인쇄하거나 예약번호를 적어가서 탈 때 바로 확인을 하는데, 예약 문자를 따로 받거나 프린트를 하기 어려웠던 이 배낭여행자는 종이에 끄적끄적해간 예약번호 하나로 나를 증명하곤 했었다. 

 이번 뉴욕 여행에는 스티브 잡스 저리 가라 하는 스마트한 '인간 구글 여림양'이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편했던 점이 있다. 사실, 여림 이도 유명한 길치라는데, 역시 사람은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멋있는 말로 포장해보지만, 대단히 여유롭고 흘러가는 대로 다니는 대책 없어 보이는 나 때문에 여림이의 1박 2일은 구글과 헤어질 줄을 몰랐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구글, 고맙고 미안해.        



#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대하여 (1)

   

 아침 큐티를 시작으로 뉴욕에서의 서로가 기대하는 것들을 나누고 아침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톡톡” 

자다가 갑자기 훤히 뚫린 내 무릎을(유럽 여행 때 너무 덥다고 찢어 먹은 내 청바지는 점점 다소 과격한 청바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가 그 시원한 무릎을 톡-하고 건드렸다. 반사적으로 눈을 떠보니, 옆에 앉은 덩치 큰 미국인 남정네들이 자기들끼리 웃음을 참으며 아닌 척-하고 있다. 아- 이것은 흡사, 초딩 때 친구들이랑 가위바위보 해서 모르는 사람한테 장난치기 게임과 같은 구 시대적인 Teasing이었다. 내가 이 먼 땅에 와서 까지 조롱당해야 하는가 어이가 없다가도, 문득 어딜 가나 한 번은 이렇게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 피식-웃게 되는 것도 복인 것 같다는 마음으로 너그러이 다시 잠을 청했다. 재작년에 태국-캄보디아를 여행할 때도 비행기에서 빵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외국인이 한참 나를 빤히 보더니 자기 빵을 건네었던 적도 있었드랬지. 

       

 소소한 재미로 달리는 메가버스에서 뉴욕 도착 한 시간 전쯤부터 눈이 뜨였다. 브레이킹던에서 볼 것 같은 나무 숲을 끼고 달리는 메가버스 안에서 사색에 잠겼다. 미국은 정말 땅이 넓다. 그래서 보이는 집집마다 앞 뜰이 있고, 농장도 굉장히 넓다. 모든 것이 널찍널찍하게 ‘공간’이 있는 것이 이 사람들의 삶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어렴풋이 그려왔던 미국에 대한 인식은, 그리 빠릿빠릿 살지 않고, 여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오기 얼마 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월 스트릿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이곳에서도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직장인들이 꽤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미국이 가진 힘, 그리고 그 힘을 움직이는 이들은 어느 곳이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싶기도 했다.     


 내가 일주일간 머물게 되는 윈체스터는 보스턴 근교의 작은 소도시인데, 우리나라의 부여 느낌이랄까. 역사적으로 오래된 곳이고, 밤에는 불 빛 하나 없고, 한적한 곳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미국은- 역시나 여유 있고 넓고 조용한 곳이다.


윈체스터의 흔한-집들
윈체스터의 흔한-밤 산책길


한국에도 ‘공지’가 많아지면 그 빈 공간이 우리로 하여금 더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들은 조금 더 건강하고 밝고 아름다운 것들이며,
또한 그 생각의 온기를 옆으로 나누게도 될까- 잘 모르지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공간이, 공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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