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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2. 2017

그 꿈, 하나 정도만 지금 해볼래요?

#패기휴가 : 미국 방랑기 2. 뉴욕 1일차

# 반베반개

    

 어딜 가나 타고난 복으로 날씨 요정인 나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본 뉴욕의 날씨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것이라는 버젓한 사실을 뒤로하고,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샛노란 블라우스를 입고 왔다. 분명히 날씨가 좋을 것이니까! 믿음으로. 뉴욕 입성(?)이 다가오자 선곡을 시작했다. Empire state~를 시작으로, 노라존스의 뉴욕, 왠지 모르게 듣고 싶은 욘세욘세 비욘세 언니의 노래까지- 쿵쾅쿵쾅 울리는 소리가 마음을 같이 했다. 역시, 햇님은 뉴욕에서도 이 날씨 요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HI NEWYORK-     


 내가 이토록 뉴욕을 설레 하는 이유는 뉴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러가지들 중에서도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보는 일정 때문이었다. 어릴 적, 아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몇 가지들(혹은- 몇십? 가지) 중에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 고~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꾸준히 그리던 꿈들이 칠해지고 있다. 어떤 것은 밑그림 있고, 또 어떤 것은 이렇게 색이 칠해진 것도 있다. 그렇게 알록달록- 조금 더 풍성해지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품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설레는 마음 한편에, 떠올려지는 이들이 있어 잠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일'이란 것이 반드시 우리 삶에 있을 것처럼 사는 내일을 모르는 '지금'의 삶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를 방종으로 살아가는 바보 베짱이는 아니다. 단지, 내일을 위해 지금을 '준비'하는 것은 지혜이지만, 내일을 위해 지금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반베(짱이)반개(미), 새로운 종족일 뿐이다. 나는 이 세대에 조금 더 반베반개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비판이라기보다-진심 어린 바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시점을 '준비'한다는 명목 하에 건강도, 사람도, 사랑도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포기해가는 모습이 그저 많이 아프고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누가 읽을지 모를 글을 통해서라도 "반베반개"를 전할밖에.


어이. 거기 예비 반베반개씨.

지금 이미 빠져들었잖아?

그럼, 어서 몰래 숨겨온- 아직 찬란히 빛나는-

그 꿈, 하나 정도만 지금 해볼래요?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


 메가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곧바로 타임스퀘어 방향으로 향했다. 어젯밤 온라인으로 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 로터리에 당첨되지 못했기 때문에, 십전팔기 우리는 오프라인으로 공연 2시간 전에 바로 하는 로터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지나가다가 처음 본 것은 라이온 킹 공연 티켓이 'Here'이라는 흔한 타임스퀘어 부근의 번쩍거리는 광고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두 개의 간판 모두 그 아래에는 전-혀 티켓부스가 없었다. 으잉? 뭐지? 하고 우리는 곧장 위키드 공연장으로 향했다. 위키드 공연장은 다행히도 대단히 큰 간판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잠시, 저런 큰 간판들이 꺼지지 않는 불로 번쩍인다고 생각하니- 타고난 환경활동가의 본능으로, '아깝다', '어디 가서 다 전기 뽑아버릴까-'라는 다소 과격한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그 불빛들이 주는 화려함에 압도되어 잠시 멍-하게 있었다.         

 

 여기저기 유명한 캐릭터들의 분장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타임스퀘어의 명물들이다. 그러나, 친절하게 다가오는 그들과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 찾아보고 오지 않았다면, 해맑게 사진 찍고 돈을 냈겠지. 물론, 그것도 처음 오는 타임스퀘어의 묘미로는 나쁘지 않았겠지만.. 예전에 뉴욕에 1년 반 정도 있던 친구가 보내왔던 사진을 문득 떠올려본다. 그래, 넌 그렇게 해맑게 웃고 돈을 냈겠구나.. 흐하하.        


 

 위키드 공연장 1층에 가니 로터리를 쓰는 데스크가 있었다. 공연 시작 2시간 전까지만 이름과 최대 2명까지 신청해서 낼 수 있는 이 종이 한 장이 우리의 뉴욕 여행의 시작인 셈이었다. 살면서 오랫동안 품어오는 막연한 버킷리스트들이 있는데,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 그런 것 중 하나였다. 너무 보고 싶은 뮤지컬이었지만 제대로 돈을 주고 사면 가격이 만만치 않은 터라 (약 150불) 30달러로 볼 수 있는 로터리에 큰 기대를 걸었다.


 떨리는 손으로 덩달라 흔들린 이름을 적어 놓고 근처를 잠시 돌다 왔다. 드디어! 로터리 추첨의 시간!!

추첨은 1층 로비 밖에서 사람들이 서있고 안쪽 문에서 바로 군고구마 통 같은 통 안에 이름을 적어서 빙그르르- 돌려서 이름을 뽑는 방식이었다. 진행을 하는 직원이 어찌나 재간둥이던지.. 아주 심장이 쫄깃한 시간이었다. 드디어! 이름을 부르는데..

"유운~지?" "윤지!"

으잉! 나다 나!! 엄청나게 해맑은 얼굴로 뛰어나갔다.

한국에서 로또 한번 안 해본 난데, 이 먼 나라에 와서 이런 당첨이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쩐지 라이온킹 티켓부스를 찾을 수 없다 싶었다니. 그리고 바로 미리 준비해놓은 여권과 현금을 보여주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깨달았는데, 이름이 불렸을 때 바로 현금이 없으면 자격이 박탈된다고 한다. 아, 역시 먼저 준비하고 나아갈 때, 기적은 일어났다. 줄을 서서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그대로 사진에 담겼다. 원-이렇게 투명한 사람이라니!


 우리는 위키드로 와서 이렇게 로터리가 당첨되기까지의 과정을 곱씹으며 연신 감사의 말들을 나누었다. 이것이 바로 내 여행이 특별해지는 중요 팁 중에 하나다. 모든 순간을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고 나누는 것. 생각해보자. 외국 나가서 다른 환경에, 다른 음식에, 다른 사람에- 지치고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기 십상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내 옆에 투덜이가 있다면? 매 순간 힘이 쫙-쫙-빠질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일을 겪은 이들도 그 결말(만족도)이 다른 것이다.

일상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감사의 힘

프로 여행자가 드리는 꿀팁이다.

 

#언행 불. 일. 치


 그렇게 우리는 들뜬 마음을 잠시 위키드에 내려놓고 미국에서 선호도 1위라는 five guys 햄버거집을 다녀왔다. 기름도 많고, 고기도 많은 나라라 그런지 양이 아주 푸짐했다. 뉴욕 물가가 워낙 사악해서 가장 저렴한 식사가 이런 햄버거 집이지만 그 마저도 1인당 13불 이상은 주어야 한다:(햄버거+프렌치프라이) 투덜거리고 있는 이 글과 달리 나는 아~주 맛있게 햄버거를 먹었다. 원래 한국에서는 여러 이유로- 햄버거를 '지양'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에 왔으니 이 햄버거는 먹어야겠다는 '의지'로 먹었다. (그거 치곤 사진이 너무 해맑다는 것이 함정..) 이런 음식들을 주식으로 먹으면 살이 안 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기이할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에서 빈곤문제-환경문제 등에 관해서 햄버거가 미치는 영향들을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 ( 그 이후로 햄버거를 되도록 안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햄버거 소비량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크게 공감하며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 곳에 오니 훨씬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 많은 햄버거-패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소가 필요하고, 그 소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숲과 나무들이 사라져야 했을지.. 그리고 그 기후변화는 누가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지-


말과 행동이 다른 K씨

 

 이렇게 파이브 가이스 하나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스스로에 신기해하며 길을 나섰다.     

"우와! 러브다! 러브!!"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히, 분명히 없었는데.. 올 때는 배가 고파서 보지 못했던 뉴욕의 포토스팟, LOVE가 있었다. 샛노란 블라우스와 어울리는 러브 동상(?)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위키드로 돌아가는데, 왔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우와!! 호프다 호프 호프!!!

내가 다니는 회사와 엄청난 연관이 있는 단어이므로, 뉴욕 가서 HOPE상을 보면 꼭 사진을 찍어 오겠노라고 다짐을 했다가- 사실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아!

해맑게 찰칵-했다.     

 

#'다른 방법으로 보는거야'


 시간에 맞춰 빠른 발걸음으로  돌아와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로터리 자리가 여기라니! 영화관으로 치면 중간에서 살짝 위인 목도 안 아프고 한눈에 잘 보이는 최고의 자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것들이었다. 어딜 가나 이렇게 복이 많다 나는 늘. 뮤지컬 위키드는 정말 말 그대로 브로드웨이 그 자체였다. 내가 브로드웨이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겠냐만은, 2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지루할 틈 하나 없었고 무대-연기-노래-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위키드의 모티브가 되는 오즈의 마법사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뮤지컬 곳곳에 숨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의 흔적도 흥미로웠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 속에서도 어느 누군가는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이 궁금했고, 그것을 이야기로 써 내려갔다. 인간이 가진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왜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하는지 순간순간이 감탄이었다. 무대장치, 연기, 노래 모든 것이 완벽했다. 초록빛이 가득한 그곳은 글린다와 엘파바의 우정 그리고 엘파바와 피에로의 사랑 혹은 그들이 노래하는 '꿈'으로 가득한 마법의 세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엘파바와 피에로의 마지막 재회 장면에서의 대사가 잊히질 않는다. (앞의 여러 상황으로 인해 지푸라기 허수아비처럼 하고 있는 피에로 그리고 엘파바)

공연시작전-너무 앞도, 너무 뒤도 아닌 로터리자리
엘파바: 넌 여전히 멋져
피에로: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엘파바: 거짓말이 아니야. 다른 방법으로 보는 거야  

엘파바의 이 대사는 예전에 피에로가 초록마녀로 늘 놀림당하고 무시당하던 상처받은 엘파바에게 해준 말이었다.    

사진출처.구글이미지검색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용기 없는 사자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뇌를 원하는 허수아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에로로, 그저 엘파바로 볼 수 있다면

그 눈빛 속에 있는 찬란한 꿈과 사랑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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