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하나 / 크리스쳔의 일과 영성
Prologue.
길지 않은 가사이지만- 완벽히 동의되었던 어느 찬양을 듣고, 그 찬양을 부른 이를 찾다가-흘러 흘러 '크로스디사이플스'라는 독서모임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도
사유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고, 그것들을 나누는 이들이 <현재>로서 곁에 없던 터라
이 독서모임에 쉽사리 마음 '곁'을 주었던 것 같다. 뭐 아직 가지도 않았지만 이미 늘 주시는 엄청난 인복에- 가정, 교회, 캠퍼스, 직장-을 제외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난다는 설렘에 며칠을 홀로 상상하며 지냈다.
Epilogue.
이 책이 나에게 완. 벽. 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과 영성' 이 두 단어가 최근 나에게도 가장 큰 화두였기 때문이다. 인턴이나 인턴 같지 않던 인턴생활을 지나 사회인이 된지도 1년 9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나름 최초로 일과 직장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하게 되었던 터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 직장에 가기 싫어본 적이 없는 나였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이런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 못내 빨리 해치우고 싶은 골칫덩어리였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 잡은 그 순간은 이 책 속에, 곧 하게 될 그 모임 속에, 결국엔 그 모든 것을 만나게 하신 그분께서 담아 놓은 뜻을 하나씩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착각.
일과 영성이라면, 당연히 그리고 단순히 '우리의 전문적 일의 자리도 영적인 것이다', '일과 신앙적인 것을 분리하지 말아라'-하는 흐름이 메인일 것이며 나는 그저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 그 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었다. 통찰력이 있었다. 소명의 삶에 대해 내가 외쳤던 이야기들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회복을 이루어가는 것에 대한 최근의 고민들이 '일과 영성'에 담겨 있었다.
#확장.
하나, 균형
날마다 피조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인간의 여가 역시 찬양, 지지 내면의 눈으로 창조의 실체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선들을 모두 포함한다.
[일과 영성 中]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사역 또한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대단히 "균형"있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노동'은 창조였고,
그분의 거룩한 '여가'는 그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고 기뻐하신 것. 함께 누리신 것이었다.
직장과 우리의 일상 그리고 교회와 우리의 일상 이 모든 사이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고 그분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느새 이 균형이란 것은 잡기가 보통 어려운 놈이 아니게 돼버렸다.
두울, 노오력
이 균형이란 놈을 잡기 위해 나는 늘 노오오오--력을 해오고 있다. 노력을 해야만이 균형을 간당간당 히라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수> 격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렇게 의식적으로 먹이를 골고루 주지 않으면 부분비만이 되고 말 테니까.
평일과 주말이 언제나 발 디딜 틈 없어 보이는 나의 스케줄이지만 나름 철저한 계획 속에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고 당연히 그 중간중간 지친 나의 몸을 위해 쉬어주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48시간의 로봇'이더라도, 나에겐 나름의 여유와 균형이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사역이 늘어가고 그 사역 안에서 곁가지인 일들이 또 주어지고 직장은 직장대로 분주하고 가정은 가정대로 돌보아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그 외에 '여가'라고 부를 만한 것을 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직장+분야 전문성을 위한 준비+사역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지만 우선순위에서 절대적인 것들이 각자의 크기들을 불리다 보니 내가 사랑하는 소소한 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즉, 창조를 위한 '노동'은 있었으나
그 창조된 것과 함께하며 누리며 기뻐할 '여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Self 노오오력 선언을 하기로 했다. 하고 있는 사역들을 당장에 손을 뗄 수는 없으니 조절할 수 있는 선에서 그 몸집을(-혹은 빈도수) 조율하여 일주일에 한 번은 소소한 쉼을, 몇 주에 한 번은 노동으로 일구어지고 있는 그 세계를 돌아볼 쉼을 주기로.
하나는 노동에서의 창조성을 더해주는 것에도 도움이 될- 여행을 떠나는 것이고 (일명. 피조세계 둘러보기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다. 게다가 나누기는 덤이다.
이 노오오력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은 아마도 앞으로 하나하나 풀어놓을 수 있겠지.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보따리가 될지. 이 보따린 또 어떤 오색찬란한 빛이 날지.
세엣, 창조성과 전문성
경작은 문화 형성의 전형이다. 따라서 학문이 발전하고,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 혁신적으로 개선되고, 과학기술이나 경영과 행정이 진보하는 건 그저 하나님이 '창조의 책장을 열어 진리를 보여주신' 결과일 뿐이다.
[일과 영성 中]
Cultivate-Culture. 우리의 삶 전반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체계와 방식인 문화는 결국 창조주가 '창조의 책장을 열어 진리를 보여주신'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광고교육원에서 소셜미디어 강의를 들으면서 더욱더 광고/마케팅/디자인이 세계에 빠져들었다. 일이 적성에 맞고 신나는 몇 안될-한국인으로서 그 신남에 불을 지펴주는 강의였다. 세상의 모든 Creative와 Inspiration을 알고 싶고 표현해내고 또 그것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그것이 참으로 성경적인-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창조주가 지은 이 피조세계의 일부인 나는, 그분의 '창조성'의 일부를 물려받았다. 그렇기에 또한 함께 지어진 이 피조세계의 모든 것들이 궁금할 테고 창조주가 피조물 세계 곳곳에 새겨 놓은 '영감'을 찾아내고 싶은 것이었다.
결국, 내가 크리에이터, 마케터,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열망과 노력은 다분히 <자연스럽고> <영적인> 것이었다. 아! 하!
넷, 하나님의 열심
'거룩하게'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할 달리기 선수를 구별한다는 의미다.
...
저마다 자신을 향해 예수님이 품으셨던 열정의 폭과 깊이를 마음으로 온전히 깨닫고 나면,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상 사는 동안 감당하도록 맡기신 일을 멋지게 해내고자 하는 열정이 생긴다.
...
이기심이 낳은 해태를 토대로 그릇된 열정을 품고 일하는 대신,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참다운 열정에 이끌려 움직이게 된다..... 주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셨으므로 굳이 자신을 입증할 이유가 없다.
[일과 영성 中]
우리의 열심이 향하는 곳은 결국 하나님의 열심이 향하는 곳이어야 할 테다.
그것은 그분이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 피조세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했고, 그로부터 물든 죄악은 창조질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다.
이 땅이 '헬'조선인 것도 모두 피조세계가 완전한 회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니, 내가-우리가-할 일은 너무도 분명하다.
온 힘을 다해 이 피조세계를 회복해나가는 것.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것.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좋은 충고'가 아닌,
진정한 '좋은 소식'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