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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an 16. 2018

함께할 수 없어 보였던 것들

#다낭 가족여행기. 첫째날

#Prologue.

여행의 시작. 노숙은 이제 안 할 줄 알았는데.. 또.. 또 노숙이었다. 처음 있던 곳에서 쫒겨나 다시 자리를 옮겨 차디찬 나무 의자에 누워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추위에 떨며 한시간 간격으로 눈을 뜨며 잠들지 않는 잠을 잤다. 있던 곳을 내 발로 떠나온 것이 여행이지만 그 속에서 있던 곳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 또한 언제나 모순된 인간의 여행일지어다.


# 훑고 지나가기.

'여행'에 대한 나의 완고한 신념, 나의 괜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내 인생엔 없을줄 알았던 바로 그 패.키.지.여.행!!! 가족들과 함께 오기 위해 그래도 꺼이꺼이-왔다. 고작 3박4일 일정에 맨날 먹던 한식을 어찌나 알차게 더 끼웠던지.... 일정표에 첫끼부터 쌈밥이라 입이 댓발 만큼 나오려던 때였는데, 도착항 곳은 감사히도 월남쌈이 포함된 베트남식 부페였다. 으하하하하하. 반쎄오, 월남쌈, 모닝글로리, 쌀국수, 미꽝, 짜조 등을 긁어 담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님 노자 마호메트를 모두 믿는 까르티아교이다. 베트남에서 무려 3대 종교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가운데 있는 큰 눈은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이 이상의 종교 대통합이 없으리라고 본다. 절대자를 믿어도 불안하고 또 불안한 인간은 자꾸만 더 강한 '종교'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신으로 불안을 느끼는 인간은 금송아지도, 은송아지도, 쇠송아지도 만들어보지만 어쩐지 불안할 뿐이다.

여전히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엔 곳곳에 이런 느낌의 그림이 가득했다. 베트남전쟁이 남베트남 내부에서 인민당과 정부가 싸운 전쟁이었고 이 때 미국도 개입했으나 끝내 이기지 못했다. 세계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미국이 이기지 못한 민족이라는 자부심히 가득한, 다섯살 부터 80살 할머니까니 영웅담이 가득한 나라였다. 인간에게 승리의 경험이란 고된 가난과 핍박을 이기는 힘이 되곤 한다.


#함께 사진 찍고 싶은, 찍기 쉬운.

다낭 앞 바다를 보고 우뚝선 불상. 바구니 광주리배 너머로 보이는 높은 빌딩들이 참 이질적이고도 슬픈 다낭을 바라보고 있다. 크기도 하여라. 전체상을 찍기 위해 얼마나 납작 엎드려야 했던지. 이상하게도 저 높고 웅장한 불상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고작, 쓰레기통이었다.

입을 우와아- 벌리고 있는 것이 꼭 요놈에게만 쓰레가를 버려야할 것 같았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보단,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좋은 나는 오늘도 이 쓸모있는 재치에 반했다.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야 다 볼 수 있는것 보단, 그저 옆에서 픽-하고 웃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좋다. 사진 한장이라도 더 같이 찍고 싶은, 그리고 그러기 쉬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보다.


#다시 보니, (사이가) 좋았더라.

이동 길에 들려준 가이드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 <갈등> 칡과 등나무라는 뜻인데, 칡이 왼쪽으로 감아자라는 것에 비해 등나무는 오로지 오른쪽으로 돌아 자란단다. 그렇기 때문에 자라도 자라도 만나지 못해 이 모습을 <갈등>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결국 돌고 돌아 감는 것이라면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은가 싶다. 다만 우리 기준에 보기에 그 둘이 딱 만나 박수를 치는 일이 없어 뵈어, 그 둘을 사이가 좋지 않다고 섣불리 단정지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실 그들은 끊임 없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만나기도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만났을 때, 등나무와 칡은 꽤나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 하이파이브. 그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뿐.


#광주리 위의 삶.

커다란 광주리. 열두 제자가 나와서 물고기 두마리와 떡을 나누어 줄것만 같다. 도무지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 심지어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이라는데, 고놈참 신통하기도하네. 기우뚱 기우뚱 볼품 없어 보여도 잘도 떠서 무엇을 날랐을까. 파도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듯- 어떤 날은 광주리 한가득 기쁨을, 또 어떤 날은 광주리 한 가득 비통을 실어 날랐으리라. 인생-그 자체였으리라. 이번 여행에서 자꾸만 눈이가게 하는 것이었다, 광주리. 그리고 그 위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패키지 첫날의 갈무리.


1.패키지는 바쁘고 또 바쁘다.

여행가면 보통 하루에 두군데 정도를 가고마는 나에게 오늘 일정은 너무나도 어마무시했다. 한 장소에 가더라도 온갖 역사와 야사들을 공부해가거나 현지인들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어 노닥거리거나, 아주 찬찬히 상상의 나래를 그리며 돌아보는 나인데, 오늘은 그저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렸다. 가장 주체적인 행위였던 ‘여행’에서 그것을 빼앗기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나의 가치관과 반하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하루 일정의 끝으로 마사지샵에 다녀온 뒤로 더 강해졌다. 우리가 낸 여행비용은 도대체 다 누구에게 돌아갈까. 서로가 한 노동에 대해 정당히 주어지고 있을까. 이 사람들은 팁이 아니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꼭 팁을 주라는 설명을 듣고 의문이 생겼다. 난 착하고 느린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오늘 뭔가 나쁘고 빠른 여행을 해버린 느낌이었다. 슬프다.

2.여행 그리고 가족

그래도 이 여행을 오게 된것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비행기를 같이 타고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구 누구보다 어머니께서 원하셨다. 물론 마지막 배신 기차를 타신 아버지는 미니등신대로 사랑스럽게 제작하여 모셔 왔지만... 그런데 그 소중한 가족여행도 결국 저녁시간 때 삑사리가 나고야 말았다. 우려하던대로 갈등을 겪는 엄마와 언니 . 하루내내 간당간당 참고 중재하던 나도 그냥 포기해버렸다. 내일 자유시간에 혼자간다고 도망가버릴까 생각했다. 여행이 더 나빠지고 있었다.


그 때, 출발 전 봤던 알쓸신잡에서 뇌과학자 교수가 했던 말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독일에서 촉망 받던 뇌과학자였던 그는 지도 교수에게 한 질문을 듣게 되었다. 자아실현과 사랑하는 가족 중 무엇을 택하겠냐고. 이 두 가지는 절대 동시에 이뤄낼 수 없다고. 하나는 찢어 버려야 한다고. 그는 결국 독일 유학을 접고 가족들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그의 아내가 심각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의 가정이 아픈 상태였단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양자택일 중 가족을 택했다고 생각한 그는 후에 다시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그 사랑하는 이들과 사는 지금이 자신의 최대의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당신이 한국 안왔으면 알쓸신잡했겠냐고 말했다는데, 그러고보니 그는 하나를 선택했으나 결국 둘다를 얻은 것 같다.


결국 그 두가지는 '갈등'을 겪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린 때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분리시켜서 한가지만을 선택해버리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극단 속에서 홀로 더 외로운 '갈등'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칡과 등나무 얽혀 있어도 결국 계속 함께였던 것처럼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 보아도 다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 여행이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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