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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ug 12. 2018

'어디에'사느냐 보다 '누구로' 사는가

25살의 유럽 배낭여행기02_프랑스 리옹

 일주일치의 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컴퓨터를 빌려 글을 정리하기엔 여러 면에서 무리가 있다. 이것도 모든 글을 옮긴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쓴 글 중 시간 흐름에 따른 것을 위주로 옮겨놨을 뿐. 예를 들어, -비둘기- -사랑하는 이에 관하여- -파리의 담배- 같은 소소한 주제별 글은 언젠가. 어디엔가 정리하겠지. 그래도 모기의 방해에서도 전투적인 자세로 글을 정리하는 건 날 위해 늘 기도와 관심으로 사랑을 퍼부어주는 귀한 동역자들에게 내가 느끼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글이지만 오늘도 그러려니 하고 읽어 주시길. 


#작품 앞에 우리 모두는 예술가_7월 13~15일




 뮤지엄 패스를 끊고 그 많은 박물관을 수박 겉핥기로 돌아볼 생각은 없었기에, 파리에서의 첫 1주일은 오르셰 미술관과 퐁피두센터만 가기로 했다. 오르셰 미술관은 1900년대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오르셰 역으로 지어졌다가 1986년에 미술관으로 바뀐 곳으로 19세기 미술을 중심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반면 퐁피두 센터는 자. 타. 공인 유럽 최고의 현대 미술의 복합공간이라고 한다. 예술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지만 미학 수업이 나에게 미친 지대한 영향으로 인해, 작품 앞에선 '축제의 감정'에 대한 지론은 오르셰와 퐁피두에서도 여전히 발휘되었다. 오르셰 안에는 마네, 모네, 고흐,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리 등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있었다. 사실 많은 그림들보다 오르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흐에 대한 미술관 벽에 쓰인 몇 줄의 글이었다. 내 기억이 확실한지 모르겠으나 "정신장애와 천재 사이에서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다."


 퐁피두에서는 칸딘스키, 피카소와 같은 표현주의나 사실주의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등과 같은 작품이 있었다. 많은 작품들이 무엇을 나타내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퐁피두 작품들의 느낌은 거대하고, 파괴적이고 그로테스크했다. 그중 커다란 모래밭 위에 돌아가던 시곗바늘이 생각난다. 한 팔은 모래 밭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 팔은 평평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두 팔은 수평으로 펼쳐져서 돌아가기 때문에 동시에 한팔은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한 팔은 다시 평평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개발과 이에 대한 복구의 노력들이 동시에 일어나며 지속되는 문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사진이 유실되어 보여주지 못함이 한이다.)


 오르셰를 지나 퐁피두로 오며 예술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상주의는 전통적 회화 기법을 파괴하고 빛에 따라 변화는 색감에 중심을 두었고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공상과 환상의 세계와 표현되는 느낌들에 주안점을 두었다.

 현재는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다시 과거가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 또한 참으로
 그러하다.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창조하고, 파괴하고 다시 창조한다. 그리고 그 파괴와 창조 사이에서 오는 그 어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것이 예술이지 않을까 싶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로, 어떻게 살기로 결정하느냐

바토무슈 위에서 본 에펠탑

 7월 14일은 파리의 혁명기념일로서 이 날을 위하여 파리와 프랑스의 곳곳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들이 벌어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이 날을 준비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보면, 프랑스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는 힘이 여기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현대에는 똘레랑스로 이어지는 이 '정체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이 날은 나의 사랑스러운 호스트의 언니 샤흘렌의 생일이었다. 에펠탑의 엄청난 조명쇼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에펠탑보다 사랑스러운 우리 샤흘렌과의 으으으-리와 내가 스스로 세운 이번 여행의 수칙 중 하나인 '내 생명은 내가 지킨다. 안. 전. 제. 일!'을 이행하느라 6시 이후론 얌전히 집에서 생일파티를 도왔다. 맛있는 샐러드와 파스타, 디저트를 준비했다. (내가 유럽 가서 바게트만 먹느라 살 빠질 것 같다고 걱정(?)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할 정도로 난 잘 먹고 디룩디룩이다. 게다가 워낙 더워 운동도 하지 않으니 광주산 흑돼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파리가 회색빛 시니컬한 사람만 가득할 것 같다는 내 생각은 편견이자 오만이었다. 이번 생일에도 조금 과장을 더하여 사돈에 팔촌까지 다 놀러 온 듯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내가 느낀 파리를 옆자리에 앉은 샤흘렌의 또 다른 한국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5년간 파리에서 지낸 그 언니의 대답은 이랬다. 프랑스는 보이는 것처럼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근데 그게 파리지앵이라고 부르는 어떠한 하나의 문화로 맞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더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만약에 내가 영국 사람들처럼 살고 싶으면 그 영국 사람들이 사는 쪽에 자주 가서 같이 먹고 마시고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고 중국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중국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쪽에 자주 가서 어울리고 이 문화 저 문화 다 어울리고 싶으면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커뮤니케이션하고 살면 된다고.


"그럼 나는?"


 나는 지금 유럽, 그것도 프랑스에 있다. 한국보다 약 7시간 정도 느리고 여름이라 39도까지 올라가지만 한국처럼 습하진 않다. 오히려 건조해 목이 아파 의도치 않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내가 원래 늘 허스키한 목소린 줄 알고 있을 정도다. (한국에선 꾀꼬리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영어로도 불어로도 도무지 그 느낌을 못 살리겠다. 아는 사람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길.) 이렇게 다른 곳에 와있는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지내기로 선택했는가. 나는 주로 외국에 나가면 되도록 현지 식대로 먹고 마시고 자고 말하려고 노력한다.(사실 이게 내 외국 생활에서 질병에 걸리지 않았던 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외적 문화에 대한 것 말고 내가 잃어선 안 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다. 제자로서. 아띠로서. 김은지로서


내가 어디에 있느냐 보다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캄보디아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을 이곳에서 새삼 다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에'있는 가를 보고 달려간다. 삼성? 현대? 서울? 강남? 한국? 외국?...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기로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왜 나만 급해, ID버스_7월 16일 리옹으로.


 K선교사님이 계신 리옹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 찍 길을 나섰다. 나의 스마트한 친구 베가 6에 의하면 50분쯤 걸린다길래(나는 유럽에서 내가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스마트폰이라는 칩 덩어리에 의하여) 버스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머나먼 이곳에서까지 반복하고 싶지 않아 출발 시간 약 2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내가 택한 교통수단은 ID버스라는 프랑스 버스로 미리 예약하면 20유로에도 파리에서 리옹을 갈 수 있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 고마운 아이이다. 단지 한국 카드로 결제가 잘 안돼서 파리 와서 결제를 하느라 35유로에 했지만 그래도 70유로 80유로가 넘어가고 자리조차 없는 TGV나 기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2시간 만의 거리를 7시간 정도에 가는 건 약간의 옵션이라고나 할까.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8시 정도였다. 나에게 잘못된 정보를 준 이름만 스마트한 이 녀석을 한 대 쥐어박고 (진짜로 한대 때렸다. 혼자 여행 다니다 보면 무생물에게도 생명을 부여하는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 부랴부랴 표 끊는 곳에서 줄을 섰는데 두 개의 라인 중 한 라인에서 직원과 표를 끊으려고 하는 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매표소! 저 이름 안보이는가? (물론. 프랑스어로) 표만 끊고 갈 것이지 왜 대화를 하고 앉아 있느냐고. 그것도 거의 20분을 웃고 대화하고 있었다. 그 옆 줄도 한 명당 10분 정도가 기본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직원이 커피 마시고 전화받고 대화하고 자기 할 일 다 하고 나서도 기다리는 손님에게 웃으며 'Sorry'한마디면 끝이 난다. 안 그래도 성격 급한 나는 시계를 때리는 액션, 발을 구르는 액션, 초조해하는 연기 등 갖은 퍼포먼스를 다해가며 동양인의 성질 급함을 널리 널리 알렸지만 버스 출발 3분 전에야 겨우 표를 끊어서 버스 승차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심지어 버스도... 40분 후에 왔다. (하지만! 사실 표를 미리 예약했다면 따로 티켓 발권 없이 바로 탈 수 있으므로 나처럼 괜한 시간 보내지 말기를..)


 버스를 기다리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봤다. 1주일 동안 내가 지켜본 프랑스 사람들에겐 여유란 것이 있었다. 3시 4시면 분명 직장에 있을 시간들일 텐데 어딜 가도 공원과 카페에 사람들이 앉아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줄을 설 때도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의 직원들은 항상 타들어 가는 내 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반박자 아니, 5박자는 느리게 다가왔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는 식당에서 손짓이나 소리로 서빙하시는 분을 부르는 것이 매우 실례라고 한다. 도대체 이런 여유가 어디서 나올까.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릴 대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결국에 그 대상이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오지 않을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기다림'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                          


 최근 사모님께서 보내주신 한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엘가나 제사장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실 대를 기다리지 못해 중혼을 했고  제사장조차도 중혼을 하는 모습은 당시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엘가나는 결국 브닌나의 자식을 먼저 얻는다. 엘가나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명히 그때그때 무엇인가에 따른 때와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기다리질 못한다. 나에게 필요한 '기다림'은 무엇일까.



# 내 심장을 주께 드리나이다. 제네바의 바울, 칼뱅_7월 17일 스위스 제네바

 내가 있는 일정 중에 타 지구 지체들이 프랑스를 방문하게 되어 함께 제네바를 가게 되었다. 처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이 신기해서 잔뜩 설레있었다. 삼엄한 경비와 내 여권에 꾸욱~찍힐 스위스 도장을! 찍을 줄 알았는데.. (나의 사적인 취미 또 하나는 여권에 다른 나라 도장 모으는 것인데, 간혹 이미 찍힌 도장 위에 또 찍어주는 공항 직원은 정말... 그러면 안되지만 한대 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선교사님의 차를 타고 누구의 경비도 없이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고야 말았다. 밀(?) 입국의 스릴 따위는 로망이었다.


 우리는 잠깐 팀을 만나기 전에 유엔 사무실 앞에 들렸다. 국제사회의 일을 하기로 마음을 품었을 때 나의 첫 로망이었던 유엔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을까? 아니었다. 내가 유엔을 처음에 바랐던 것은 그저 국제사회에서 힘을 발휘하는 가장 큰 단체라는 타이틀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기관의 명성보단 정말 그 기관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제네바 유엔 사무국이 예전처럼 우~~ 와!! 하고 다가오는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스위스는 진짜 물가가 비쌌다. 보통 사람들이 맥도널드 빅맥세트를 기준으로 물가를 체감한다고 하는데 여기 빅맥은 약 12유로가 넘는다. 누가 15000 정도를 주고 빅맥세트를 사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린 스위스의_중국식당에 갔다.


 점심을 먹은 후 바스티옹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종교개혁 기념비가 있었고 칼뱅을 비롯한 파렐, 녹스, 베자의 동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칼뱅의 동상이 약간 더 앞으로 나와있다는 것. 중요도 순인가.) 비록 조각이었지만 칼뱅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르게 바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강직한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열정이 여전히 제네바를 덮고 있었다. 제네바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다시 제네바로 돌아올 때 칼뱅이 했던 고백은 '내 심장을 주께 드리나이다'였다. 사람은 죽어서 그가 한 말이 남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하나님께 어떤 고백이 되는 삶을 살고 갈 것인가. 올바른 신학이 올바른 신앙을, 올바른 신앙이 올바른 삶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또 떠올려 본다.



#걸어서 리옹 한 바퀴_7월 18일

 여기 센터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아..끊이지 않는 이놈의 인복:) 정말 한 명 한 명 다 배울 것들이 많고 사랑스러운 이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언제 한번 나의 나태함을 딛고 이 공동체를 소개하는 글도 쓰고 싶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보내주시니 내가 어떻게 나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센터에 지내는 지체들과 또 잠깐 들른 지체들과 함께 리옹 시내를 구경했다. 든든한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게다가 나랑 말까지 얼마나 잘 통하는지 오고 가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리옹의 부숑 거리, 눈과 입이 즐거운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사실 나는 여러 번의 동남아 경험을 통해 벌레 정도는 쉽게 먹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번 점심 요리는 사실 좀 난이도가 있었다. 리옹의 전통 요리라는데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말에 스스로를 과신하며 당당하게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무슨 순대 같은 것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두리안을 삭힌 느낌의 소스에 풍덩 빠져있었다. 두리안도 좋고 순대도 좋지만 두리안을 삭힌 소스는... 먹을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었다. 다 먹고 싶지은 않았다. 절대로. (감자를 시켰더니 순대가 나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고난의 식도락 행군을 끝내고 거리 이곳저곳을 다니고 큰 쇼핑센터에도 가고 그 영수증을 이용해 혼강에서 배도 탔다. 이곳에 와서 한국에서도 안 하는 것을 하는 게 있다면 주로 따뜻한 커피만 있는 이 곳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프라푸치노를 갈망한다거나 강에서 배를 타는 것과 같은 것이겠다. 한국에 가면 꼭 한강에서 외국인 관광객 코스프레를 하며 유람선을 타보리라.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같이 가주겠지. 근데 우리 어느 나라 사람으로 할까?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야경'이란 것을 봤다. 유럽에 온 이후로 나는 내 안전제일 철칙을 잘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날은 든든한 보호자가 있었기 때문에 맘 놓고 리옹의 야경을 즐길 수가 있었다. 푸비에르 성당과 리옹의 작은 에펠탑, 리옹의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을 따라 주황 불빛이 아른거리는 골목은 정말 아름다웠다. 불빛이란 것이 사람에게 주는 감정은 참 복잡 미묘한 것 같다. 그 빛이 어떻게 비추이느냐에 따라. 



#또 다른 예배_7월 19일


 오늘은 오전엔 프랑스 예배를, 오후엔 한인 예배를 드렸다. 감사하게도 오전에 듣는 귀 없이 앉아 흘려보낸 말씀이 동일하게 오후 한인 예배 때 있었다. 예배 후엔 구원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구원의 삶을 매일 살아가야 하는 것을 전하는 선교사님의 눈에는 이 땅의 영혼들을 향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 또한 이곳에서도 끊임없이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늘 낮에 돌아다녀 잘 몰랐지만 지난번 처음으로 해가 진 이후에 돌아다녀 보니 그냥 지나다니며 약간의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뭐 직역하자면, '안녕 한국 여자, 너네 예쁘다.' 뭐 이런 건데, 그냥 지나가며 하는 말이라 크게 위협이 되진 않지만 그냥 그런 사람들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평화가 필요한 곳인지 알 것 같다. 다양한 인종과 똘레랑스라는 엄청난 단어 안에 숨어있는 꼬이고 꼬인 영혼들, 그리고 그것들이 간혹 테러나 일상의 범죄들로 나타나며 서로를 불신하며 살게 되는 이 땅.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의 죄의 
존재를 '관용'이란 단어로 표현하고는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일기를 마치며 다가오는 느낌들과 마음들은 한층 더 복잡 미묘하다. 참 단순한 것 같다가도 사색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생각은 극단적이고 복잡해도 행동은 합리적이고 단순하다는 것. 생각하는 만큼 행동했으면 힘들어서 살기 어려웠지 싶다. 이 공개되는 글로는 미처 적어내지 못한 마음들도 언젠가 정리하고 당신에게는 나눌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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