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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ug 15. 2018

부암동 나들이

#서울 나들이_부암동 인왕산

 #본격 인복 자랑의 글


 전전 회사의 인턴과 직원으로 만난 우리는 참 재밌는 조합이다. 그 신비로운 조합은 체감온도가 38을 웃도는 한여름, 그것도 광복절날 굳이 광화문을 지나, 인왕산길로 향했다. 성격 급한 그대를 위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늘도 참 많이 웃고 행복한 하루였다. 정말 나의 인복은 바다 같이 넓고 깊으며, 이 사랑스러운 인복을 감사하며 경탄하는 일은 해도 해도 지겹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자랑하려고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글’을 적는다. 리슨업:)


#윤동주 문학관: 구김을 마음껏 허용하는 때에

 부암동은 작년~올해 들어 내가 제일 많이 오는 곳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사랑하는 가까운 지인들은 거의 다 나와 함께 이곳을 거쳐갔다. 이 곳에 올 때마다 버스에 내려 가장 먼저 인도하는 곳이 있다. 윤동주 문학관, 모태 이야기꾼으로 어딜 가든 유익한 TMI를 늘어놓는 나지만, 어쩐지 이곳에 오면 내 말은 아끼게 된다. 그래도 충분한 곳이다.


 5번째 보는 것 같은 영상, 윤동주 시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을 꼽자면 이것이다.
"그는 모자에 진 작은 주름조차 견디지 못했다." 
구글구글한 티셔츠에 잔 얼룩이 튄 바지를 입고, 살까지 흐들흐들해져도 여전히 날씨 탓이라며 괜찮은 ㅡ견디는ㅡ우리는 참 대단도하지. 그래도 우리 마음만은 주름 없이 쫙-펴져있으면 좋겠다.
자화상이 비추인 우물이 필요한 요즘이다.



#부암동 뒷길

"아니, 서울에 이런 길이 있다고?"

사람도 없고 그래서 별소리도 없는 길을 걸으며, 우리는 바람보다 강한 우화 속 태양을 보란 듯이 이겨버렸다. 몇십 분간 산길이 아닌 아스팔트를 헤매다 나온 소담한 마을을 그래도 시원하지 않냐며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걷다가, 조그마한 동네 슈퍼에 멈추었다.


"오늘 날이 너~무 따뜻하지이~?"
긍정왕 주인 할머니의 세상 여유로운 질문은 ‘크으~’ 외마디 감탄과 함께(Me) 코카콜라 같은 청량감을 선사했다.



#백사실계곡: 백사 이항복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궁금한 것도 신기한 것도 많은 청춘 20대 우리들은 ‘백사실 계곡’에 와서 ‘백사실’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본격 탐구(?)에 들어갔다. 결국 우리는 초록빛 포털사이트의 도움을 통해 조선시대의 학자, 문신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알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연못 터라고 하는 동그란 공지에 푸르게 빛나는 저 풀들은 무엇일까?... "제가 한 번 저기 아저씨들한테 물어볼게요!" 우리 행동주의자 련쌤은 파워당당으로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아저씨들에게 다가갔다.(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불안한 눈빛) 약 60초를 교무실에 영문 없이 불려 간 고등학생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쭈뼜거리던 그녀는 아저씨들에게 물었다.
"저 죄송한데요, 혹시 저기 저 풀이 뭔지 아세요?"


 오늘의 여행 중 가장 사랑스럽고 빛나는 우리의 순간이었다. 다 큰 청년들이 몇 초면 끝날 검색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에게 풀이름을 물어보는 장면.


"아 저거~"(기대 기대)

"나도 몰라. 여기가 연못 터였는데~ 그 자리에 이름 모를 잡초 씨가 날아와서 자리를 잡고 퍼진 가겠지."

"아 이건 그냥 내 추측이야~ 허허허"


우리는 모두 언제든 한보따리 풀어낼 준비된 이야기꾼이다.



#내 마음을 놓치지 않은 그대에게

 3시간 체감, 1시간 실제의 등산(?)을 끝내고 계곡이 마을로 이어지는 끝자락에 걸터앉았다. 나무와 바위만 있으면 어디든 즐거운 소풍터이다.


 "나는 이렇게 떨어져 내리는 나무 이파리 사이 너머로 보이는 그림이 왠지 좋더라."


나중에 사진을 받아보니, 내가 쳐다보던 꼭 그 자리, 그 장면이 있었다. 흘려보낼 수 있는 말을 놓치지 않고 담아준 그대는 참으로 빛나는 사람이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던 햇살보다 더 반짝거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너 좋아하잖아:)



#아람단의 끝

"우리 뭔가 아람단 같지 않아?"

어릴 적 향수 가득한 단어를 소환시키며, 2018년 서울 한복판 우리만의 정겨운 시골길을 걸었다. 잊었던 모험심 가득한 얼굴들이 되살아났다. 더워서 찌든 호박잎을 보며 "이거 싸 먹으면 맛있잖아"하고 웃을 수 있음이 놀랍고 감사하다.


 짧고 굵은 산행을 마치고 나는 또 이들에게 도토리묵이 사리로 나오는 돼지 두루치기를 전파하였다. 지글보글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모든 음식을 증발시킨 우리는 이름도 예쁜 '창의문 뜰' 카페에 마주 앉았다. 먹어보면 알 거라는 직접 쑨 팥 맛에 감탄하며 글로 다 옮기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정말 다 옮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나를 아이돌처럼 칭찬해주며 세워주는 초롱초롱한 너희들아,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아, 고작 몇 년 더 산 내가 한마디만 할게.

우리 오랫동안 반짝거리게-만나자:) 부탁이야.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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