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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Nov 05. 2022

호사스러운 취미 생활

도서관이 있는 동네


비행기가 가까이에서 날아다닌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싼 동네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동네가 좋다.

신혼 초에는 이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땐 도서관까지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운영을 하고 주차장도 넓고 도서관을 둘러싼 주변에 나무가 많아 공기도 좋다. 주변뿐 아니라 실내도 굉장히 조용하고 깨끗하다. 구비하고 있는 책도 많아서 갈 때마다 ‘이제 책 사지 말고 빌려봐야지.’라고 생각하는데, 임신하고 입원하는 동안 책을 반납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동안 대여는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여/반납하는 시스템도 무척 잘 되어 있어 모든 연령의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해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반듯한 자세로 책을 보고 계시는 장면, 두꺼운 안경을 쓴 할머니가 영어 공부를 하고 계시는 장면도 익숙하다.

게다가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 모두 어린이 주민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아무리 천천히 말을 해도 기다려주고, 자신 없어 보이는 말투에도 몇 번이나 되물으며 차분하게 응대한다. 얼마나 근사하고 귀한 장면인가. 도서관에 가보면 안다.


‘아 직원들 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이곳을 매우 아끼고 있구나. 가치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귀하게 여기고 있구나.’


비가 온 뒤의 도서관은 좋은 냄새가 난다. 평소보다 풀냄새도 책 냄새도 짙어져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젖은 땅 위에 떨어진 밤송이 껍질과 나뭇잎들. 물기를 머금은 건물도 좋다.


오늘은 이런 걸 느끼고, 관찰하느라 책은 거의 못 읽고 나왔지만… 육아휴직 덕분에 낮에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있어서 이런 호사를 누린다.

언젠간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오는, 분에 넘치는 상상을 한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와 서점에 다녔다. 다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은 서점에 갔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넓고, 편하고, 아늑한 곳은 바로 그 서점이었다. 넓은 서점에 흩어져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사는 일이 익숙했다. 엄마에게 받은 크고 고마운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에게도 도서관에 가는 일이 아주 일상적이고 쉬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맘 먹지 않아도 되는, 문턱이 낮은 일상이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그 일이 부모에게 익숙하면 된다.

뭐 그럼에도 싫어할 수 있겠지만… 비 온 뒤의 풀 냄새 정도는 좋아해 주겠지.

지금은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비 온 뒤의 도서관 근처를 함께 서성거리기만 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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