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나를 위한 소비를 해볼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보는 걸로 말이죠. 나는 무얼 소비했을까요?
저는 20대에 열심히 신용카드를 쓰는 청년이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며, 꽤나 수입이 불규칙했지요. 처음 신용카드를 썼을 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통장에 잔고가 없는데도, 돈을 쓸 수가 있다고?대박!
심지어 한 달에 30만 원 이상만 써도 다음 달에 할인 혜택이 있다지 뭐예요? 그렇게 누적금액은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늘어만 갔습니다. 프리랜서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종종 가졌는데, 그럴 때마다 신용카드는 '없어도 있는 척'하기 딱 좋은 수단이었지요. 무자비한 소비를 불러일으켰거든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걸 다 해줄 수 있었고, 필요하단 걸 다 사줄 수 있었지요. 나를 위한 구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백만장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지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저는 카드값을 내는데 월 수입 전부를 지출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수입 그 이상으로 카드값이 나오기도 했지요. 대출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빚도 늘어났습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던 거지요. 제게 남은 건 지갑에 들어있는 여러 장의 신용카드뿐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저의 이 생활을 멈춰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무계획적인 소비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늘이 도왔던 거지요. 다행히 지금은 체크카드 위주의 소비를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꼭 필요한 혜택이 있을 때만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그마저도 바로바로 결제하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통장 잔고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소비를 계획할 수 있었지요. 덕분에 충동구매도 많이 줄었습니다. 무언가 구매 욕구가 생기면 한 번 더 생각하다 보니 일단은 소비를 멈추게 되더라고요. 신기한 건 쓸 수 있는 돈은 줄었는데, 마음이 점점 풍족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고 싶은 걸 사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지 않는 삶…. 생각만 해도 불행한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사지 않아도,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힘들거나 불행하지도, 심지어는 아무렇지 않기도 하더군요. 오히려 통장에 찍혀있는 작은 숫자가 마음의 크기가 되기도 했고요. 오히려 쓰지 않고 아낄수록 행복해졌습니다.
어디선가
-내가 먼저 돈을 귀하게 여겨야 돈이 나를 따른다
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무언가에 돈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보니 하나를 사더라도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잘 소비하게 됐고, 그렇게 구매하고 난 물건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지요.
예전의 나였다면, 나를 위해 벌써 무언가를 소비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조금 더 생각하고 기다리려 합니다. 구매할 타이밍이 금방 오지 않을까요? 고민 끝에 제가 무언가를 사들인다면 그건 정말 잘 산 게 분명할 테지요. 오히려 비워내고, 덜어낼수록 꽉 채워지는 삶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나를 위한 소비는 돈이 아닌 '시간'입니다. 지출을 해서 물건을 사들이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일로 대신하려고요. 참 좋은 생각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