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꿈에 옛, 오래전 인연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한 때의 인연이었던 사람들, 잊고 살면서도 크게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던 사람들. 며칠 연속으로 비슷한 꿈을 꾸는 게 참 의아하더군요. 이런 종류의 꿈을 꾼다는 건 보통 사람의 환경이 크게 바뀌기 전이나 현재에 만족스럽지 못할 때라고 하니까요. 누군가와 평생 함께 나아가기로 약속했던 난 아마도 전자에 속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펜과 함께 사람들과의 인연까지 모두 놓아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서른을 목전에 두었던 전 불완전한 시간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날들을 택하겠노라, 결심했지요. 글을 그만 쓰고 싶었고, 그렇게 동네 서점 직원이 되었습니다. 작가 일을 하던 당시 맺었던 인연들과는 서서히 연락을 하지 않게 됐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을 즐겁게 보냈던 동창들과는 대부분 시절인연으로 남은 지 오래였지요.
그릇이 작은 탓에, 제 마음이 힘들 땐 메신저 목록에 뜨는 옛 인연들의 알람도 불필요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식까지 신경 쓰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친구 목록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겼고, 누군가는 연락처조차 남지 않게 됐지요. 이제야 흔들렸던 인생에서 마음이 편해지며 타인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겼지만, 메신저 목록에는 남아있는 건 가족들 뿐입니다.
꿈속의 그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 꿈에 나왔던 사람들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관계가 아닌 사이. 언제부턴가 존재만으로도 신경이 쓰여 카톡 목록에서 숨겨버린 사람들. 아니, 사실은 번호조차 모르는 관계. 가끔 지나간 인연들이 궁금해 메신저를 들춰보곤 합니다. 잘 살고 있구나 안심하고, 살다가 한 번쯤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에게는 수백 번 고민 끝에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게 되는 듯합니다. 과거 어느 한순간의 기억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과 그때 사이의 틈이 너무도 벌어져버렸으니까요. 특별한 이유 없이
-문득 생각이 나서
라고 해도 말입니다. 만약 다시금 인연이 닿더라도 옛날의 그 좋았던 관계로 지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기에 끝내 인연이 닿지 않는 건 아닐지….
한 번쯤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들. 끝내 얼음을 깨고 나오지 못해,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인연들. 세상은 좁다는데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동안 한 번도 어깨조차 스친 적 없던 사람들. 다시 옛날처럼 잘 지낼 수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인연들. 그러나 제 살 길이 바빠 또 끊어질 인연이라면 지금처럼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며, 살아가길 응원할 뿐입니다.
가끔 과거가 그리워질 때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저는 지금을, 앞으로를 살아가야 합니다. 당장 내 옆을 지켜주고 있는 인연들과 함께 오래, 나아가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한시의 그리움으로 남은 사람들은 그 자체일 때 가장 빛나는 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