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풀밭 위 벤치를 발견하면서부터 했던 것 중 하나는 국어강사였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학원을 운영하셨었기에 어쩐지 조금은 익숙한 일이었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벤치에서 일어나 풀밭을 걸어갔습니다. 여전히 맨발이었지만 이슬 맺힌 풀을 밟는 발바닥은 시원하더군요. 학원 원장님은 지금껏 아스팔트 길을 걸어온 나를 보고, 자신의 아이들을 맡기셨던 걸까요? 처음엔 100m, 다음엔 200m, 그리고 점점 더 먼 길을 돌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이 길어지면 오는 길도 그만큼 길어졌기에 벤치에서 멀어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벤치에 앉은 대부분의 시간은 수업을 준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학생 수가 많아지거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비해야 했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순수함은 늘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지요. 나를 믿어준 원장님을 향한 감사함도 컸습니다. 그런데 난 지난 5년 동안 그 믿음에 충분한 은혜를 보답하였을까요? 아마도 아니었을 테지요.
그러던 어느 날, 벤치 한쪽 끝에 걸려있는 실 한가닥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실을 꺼내어 꼬다 보니 어느덧 가방이 되고, 티코스터가 되었으며, 머리끈이 되더군요. 벤치에 앉아 수업 준비에 한창이던 도중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뜨개질'이라는 또 다른 취미가 생겼고, 이는 나의 또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난 일러스트도 배웠고, 유튜브 영상 편집도 시작했지요.
그렇게 벤치 위에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건 모두, 앉아있을 수 있는 벤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의 대부분은 생계를 책임지는 본업을 하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나 역시 이 벤치 위에 앉기로 결심했을 때, 그랬습니다. 만약 평평한 나무벤치가 아닌 돌이나 모레였다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지요. 여러 일을 병행하다 힘이 들 땐 침대가 아닌 벤치임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지난 5년의 세월을 잘 견뎌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벤치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힘들 때 편하게 마음 둘 수 있는 의자였고, 때로는 꿈을 꿀 수 있는 집이 되어주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벤치위에서 영원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이 벤치를 발견하였나 봅니다. 그와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면서,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글을 온전히 써보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습니다. 물론 벤치에 앉은 채로 말이지요. 해오던 일을 멈추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끝내 저는 용기를 내보기로 합니다. 아등바등하며 버티고, 발바닥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진물이 나 주저앉기도 했던 시간들은 이제 추억으로 남겠지요.
두 사람의 온기로 데워진 이 벤치 위의 시간들을 기대해 봅니다. 풀이 자라 꽃길이 보인다면 그때는 벤치를 떠나야 하겠지만, 다짐해 봅니다. 꽃밭이 보이는 순간까지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과 함께 이곳을 지켜야겠다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