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담은 드라마
라는 답을 했습니다. 아마도 꿈이 있었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제 눈빛은 반짝였을 테지요.
그 많던 할 말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제가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세상을 향한 말이 많아서였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말로 다하지 못할 때 펜을 들었고, 어떤 형태로든 글을 써 내려가면 마음이 후련해지곤 했지요. 작은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글 한 줄이 잘못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런 제게 잠시 쉬어가기로 했던 작은 벤치 위의 세상은 너무도 편안하고 아늑했습니다. 굳이 꽃길을 걷기 위해 험난한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지 않아도 괜찮았지요. 그때 처음으로
-어쩌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조금씩 세상을 향한 외침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무던히 애쓰지 않아도 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세상을 향한 할 말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힘들게 노력해 봤자 어차피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화를 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오랜 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
만 이룰 수 있는 일이 돼버렸지요. 더 이상 나는 대단한 사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닌 그저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세상의 불의를 보아도 그러려니 침묵하는 게 편하더군요.
작은 벤치 위의 세상에서 느리지만, 천천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준비를 끝 마치고 나서도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음을 깨달은 끝내 잠을 청하기로 하였지요.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도 열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짧은 낮잠이 될지, 긴 밤잠을 청하게 될지는 알지 못했지만요.
잠에서 깨어나 다시 눈을 깜빡여봅니다. 생각보다 긴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뒤척이긴 했지만 자는 동안에도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게 있었나 봅니다. 눈을 뜨고도 한참이나 멍해있는 제 옆으로 누군가들의 손이 보였습니다. 잠이 든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 내 손을 잡아준 또 다른 사람들. 없던 믿음이 생기면서 어떠한 마음을 받은 걸까요? 조급한 마음을 버렸고, 다시 걸어갈 힘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이 하고 싶은 말들로 하나 둘 채워져 갔지요.
이내 벤치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직 어느 길 위에서,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발을 내딛기로 했습니다. 풀밭 위에서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고, 또 다른 길이 보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