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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Nov 03. 2024

한날의 벌레 대소동


 제가 사는 곳에는 세 군데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1번 보금자리는 본가, 2번 보금자리는 예비신혼집, 그리고 3번 보금자리는 저의 직장인 동네서점이지요. 이상하게도 본가에 있으면 모든 감정을 음식으로 풀어버리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배꼽시계가 울리면 습관적으로 배달어플을 켜고, 당류가 잔뜩 함유된 간식도 참지 못할뿐더러 자제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사방에 자리 잡고 있는 맛있는 음식과 '더 먹어도 된다'는 가족들의 유혹 탓인 듯합니다.


 그래서 어제는 온종일 2번 보금자리에 가있었답니다. 원래도 쉬는 날이면 가서 할 일을 하고 그이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어제의 목적은 '식욕을 절제하기 위함'이었으니까요. 오전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점심에 간단히 단백질셰이크를 챙겨 먹은 뒤 보금자리로 향했지요. 야무지게 노트북을 챙겼습니다. 저녁에 그이가 오기 전까지 제 할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웬걸, 책상에 앉기가 무섭게 제 눈에는 창틀에 죽어있는 말벌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11월에 말벌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군요. 더 놀라운 건 창문 어딘가의 틈새를 비집고 방충망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제가 잘못 본 건가 싶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답답함을 자주 느끼는 터라 한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은 열어두어야 하거든요. 말벌이 죽어있으니 창문을 열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더군요. 어쩔 수 없이 반대편 창문을 열기 위해 커튼을 걷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지요. 이번에는 방충망 너머 창틀 구석에 손등만 한 나방 한 마리가 끼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의 창에 두 마리의 벌레라니요.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답니다. 그이가 오기까지는 네 시간 남짓 남아있었거든요.


 저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이에게 내내 무섭다며 문자나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거리가 나름 있어 가깝다고는 볼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유독 2번 보금자리에선 다양한 벌레들이 자주 눈에 띄고는 하더군요. 본가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던 말벌에 나방이라니요. 한 여름에는 날파리와의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유독 한 구석, 모퉁이에서만 알을 까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는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요.


 심신을 진정시켜야 했던 저는 온 방 안의 불을 꺼둔 채 거실로 나와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벌레 있는 영화관이라며 아주 놀렸 그이가 퇴근하고 오자마자 한 일은 나무젓가락으로 말벌과 나방을 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말벌은 손쉽게 잡았지만, 나방을 집는 순간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겠어요. 살아있는 나방이었던 겁니다. 졸지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저까지도 놀라 자지러졌고요. 창틀이 좁다 보니 그 공간에 끼어버려 빠져나가질 못했던 겁니다. 그이가 조심스레 나방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주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자신도 굉장히 무서웠다며일하는 내내 퇴근 후 잡아야 하는 말벌과 나방이 스트레스가 되었다더군요. 문득 그이에게 미안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끝내 저희는 어떻게 했냐구요? 미세방충망으로 교체하기로 했답니다. 모든 곤충과 벌레를 잡아주고, 물구멍도 막아줄뿐더러 행여 다른 구멍이 있는지도 꼼꼼히 봐주신다는 사장님께 말이지요. 비록 올 사계절은 벌레와 함께였지만, 내년에는 날이 무더운 한여름에도 벌레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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