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의 허구는, 현실과 어떻게 관계하는가
만화나 게임 등 서브 컬처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소재와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살인은 너무나 흔해서 이러한 성찰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이이다. 고문이나 강간 등 가장 기본적인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수 세기 전 금지라는 이름으로 청산된 것 같은 인간의 폭력 행위가 빈번히 그리고 버젓이 자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가 아무렇지 않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등장하는 차원에 관련한다. 오타쿠들의 은어로 '2차원'이라 불리는 허구의 영역에서 벌이는 행위는, 실재성을 결여한다. 따라서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에게도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소재들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이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창작의 영역은 '도덕적 중립지대'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문학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한다고 할 때, 특정 문화적 관점에 귀속된 도덕적 태도가 이러한 자유로움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구약만 보더라도,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 끔찍한 범죄가 다수 등장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임과 동시에 가장 오래된 윤리적 지침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너무나 과격하고 변태스러운(!) 오타쿠 콘텐츠의 소재 및 그것의 표현 양식은 거부감과 더불어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허구 창작물 속 등장인물이나 그것이 처한 상황이, 현실의 어떤 존재와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기가 어려울 때 발생한다. 가령, 만화 콘텐츠에 어린 미성년의 여아가 등장하여 폭력적인 상황에 처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묘사가 촉발하는 감정적 반응은, 성인 남성이 비슷하게 폭력적인 상황에 처할 때에 비해서 더 강력하고 부정적일 확률이 높다. 이런 단편적인 예시만 생각해 봐도, 현실과 허구 속 세상이 완전히 유리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만화나 게임의 지면 및 화면 - 오타쿠 용어로 2D라고 부르는 허구의 영역 - 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일종의 기호(sign)이다. 그 이미지들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호학자 퍼스(C. S. Peirce)의 기호론에 따르면, 지면의 기호와 현실은, 도상, 지표, 상징이라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해서 대상과 연관된다. 도상(icon)은 현실의 대상과 닮기에 성립한다. 지표(index)는 현실의 대상과 인과적인 관계를 가진다. 상징(symbol)은 완전히 관습적으로, 사람들 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만화에 등장하는 어린 소녀는 현실의 대상과 닮았기에 일종의 도상이다. 더하여 여자 아이의 가느다란 팔다리 등 특징은 '연약함' 등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신체적 특성을 지표 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종이 위 어린 여자아이를 묘사한 그림이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현실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상성과 지표성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 어딘가에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모습을 한 어린 여자아이를 상상하게 된다. 여기에 폭력 상황이나 가학적 행위가 더해져 묘사될 경우, 마치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일종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수위 높은 폭력물 등 특정 콘텐츠를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하고 일정 나이 미만의 사람에게는 공개를 제한하는 것도, 결국 비슷한 사고의 결과로 벌어진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허구와 현실은 다른 차원이지만, 두 세계는 유사성을 지닌다. 따라서 성인에 비해 인지적 판단력 등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미성년의 현실 생활에, 부적절한 콘텐츠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법 제정자들의 판단이다.
허구적 공간과 현실의 연관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허구적 상상의 장은, 어떤 윤리적 실험이 가능한 공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현실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허구의 장을 윤리적 실험실로 상정한다면, 그 실험의 동기가 가치를 결정한다(어떤 의미에서 이것을 문학의 기능이라고 판단하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는 조금 더 복잡하고, 이 질문 자체가 오타쿠가 현실에서 편견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알려주기도 한다.
보다 쉽게 말해서, 허구적 공간을 일종의 대리만족의 장으로 볼 경우에는, “그렇게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것을 욕망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겠어?” “허구의 장에서라도 아무튼 그런 걸 욕망한다면, 여건이 되면 현실에서도 그걸 이루고 싶다는 뜻 아니야?” 등의 질문이 발생할 수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체가 윤리적 비판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타쿠 서브 컬처 문화가 만연하여 관찰이 용이한 특정 지역에 가 보면, 주류 사회 시선에서 봤을 때 부적절해 보이는 콘텐츠를 광고하고 사고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 일부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성적 수위가 높거나, 도덕적 의문이 드는 정도의 묘사를 하기도 한다. 그곳을 오고 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그 도덕적 부적절함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충분히 의심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매체에 허구적으로 표현된 욕망의 산물과 현실적 욕망 사이에는, 단순히 대등한 관계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복합적인 작용과 그로 인한 간극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코믹콘 등 오타쿠 이벤트를 갈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오타쿠 인구를 목격하고는 한다. 오타쿠들이 만약 표현된 것을 모두 현실에서 이루고자 시도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법적이고 도덕적인 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오티쿠들은 그저 만화를 읽고, 굿즈를 사고, 그냥 잔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학교와 직장으로 향한다(또 다른 콘텐츠를 사기 위해서...). 물론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오타쿠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서이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그들은 현실에서도 그런 추잡한 욕망을 충족하려 들지 않을까요? “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허구적 공간에서 비윤리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범죄의 동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수의 오타쿠 출신(!) 범죄자 표본과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만약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허구적 상상을 현실로 옮기고자 하는 것이라면, 허구의 영역에 그렇게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 역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전재산 쏟아부어 집 안을 피규어 왕국으로 만들기 전에, 허구의 욕망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투자(!)에 조금 더 투자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이 있다. 오타쿠의 허구적 욕망은, 애초에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형태인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가령 BL을 좋아해서 고수위 BL을 소비하는 여성 오타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여성의 욕망은 여체와 남체 중간 어딘가의 특성을 가진 존재를 성적으로 함락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크나큰 남성성을 지닌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또 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욕망은 매우 유동적이고 언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욕망을 어떻게 주어진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현실화할 것인가?
여성 오타쿠의 BL만 그런 것 아닌가요,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남성향 오타쿠 콘텐츠도 결코 이 ‘현실성의 결여’ 차원에서 여성향 콘텐츠에 뒤지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존재는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가령 남성향 오타쿠들이 선호하는 애니메이션 장르 중 '미소녀 동물원' 등으로 통칭되는 장르는 어떠한가? 이러한 장르물에는 기존의 소년 만화에 등장하는 것 같은 성적 매력을 과도하게 강조한 여체가 등장하지도, 이들에게 변태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폭력적인 남성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교적 평이하게 생긴 여성 캐릭터가, 밴드를 꾸려 활동하거나 그저 학교 생활을 하는 등 일상을 그린다. 이러한 장르를 열심히 보고 관련 굿즈를 모으는 남성 오타쿠의 욕망은,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될까?
이전 글에서 오타쿠라는 존재는 허구 친화적이지만, 그만큼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만약 오타쿠가 허구를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곳으로 인식하고 철저하게 이 둘을 분간한다면, 허구의 영역에서는 현실에서 불가한 비윤리적 행위나 존재 양식을 추구해도 괜찮은 걸까? 가령, BL을 좋아하는 여성 오타쿠가 남성 캐릭터가 윤간을 당하는 서사를 그리고 쓰면서 쾌락을 느껴도 괜찮을까? 미소녀물을 좋아하는 남성 오타쿠가 이 캐릭터의 신체를 파손하고, 심지어 먹는 행위를 그리는 콘텐츠를 좋아하면 사 모아도 괜찮을까? 앞서 다소 오타쿠의 허구 애호를 옹호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한 글쓴이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막상 다시 입을 쉽게 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앞서 제기했던 질문이다: 매체에 허구적으로 표현된 욕망의 산물과 현실적 욕망 사이에는, '단순히 대등한 관계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복합적인 작용'과 '그로 인한 간극'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성애자 여성이 만화 속 남성 간의 동성애적 행위를 보면서 쾌락을 얻는다고 해도, 이러한 콘텐츠 및 이것이 매개하는 쾌락은 현실화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오타쿠 여성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허무한 허구적 대상을, BL을 좋아하는 여성 오타쿠는 기꺼이 욕망한다. 결코 현실화될 수 없는 허구적 대상이 실질적 쾌락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과정에는 어떤 작용이 관계하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째서 이러한 작용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고, 특정 오타쿠 인구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허구적 콘텐츠가 '어떤 작용'의 산물이라면, 이 작용에 대한 이해가 콘텐츠의 도덕성에 대해 더 다층적이고 정확하게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