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ter Skelter, 욕망을 낳는 주체

여자, 주체성, 욕망, 어머니

by 요비

<헬터 스켈터>, 1995

일본의 만화가 오카자키 쿄코의 1995년 작품이다. 표면적인 줄거리만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전신 성형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얻은 여자가 연예인이 되어 명성을 추구하다가 서서히 몰락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요약하면 어딘지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추구한 여자가 부적절한 욕망 발현을 처벌받는다'라는, 권선징악적 납작한 이야기로 보인다. 그렇지만 막상 읽어보면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혹은, 이야기 구조 안의 여러 요소가 너무 빙글빙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서, 되려 저렇게밖에 요약이 안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helter skelter attraction.jpg '헬터 스켈터'는 이렇게 생긴 놀이 기구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빙글빙글 내려오면서 장식되어 있는 여러 가지를 빠르게 지나치며 구경하게 되는 구조.


<헬터 스켈터>가 던지는 질문

본 작품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의 만화이다. 그렇지만 파격적인 수위와 단순하지만은 않은 플롯 전개, 주인공의 정신병리적 상황을 표현하는 초현실적 연출 덕분에 페이지마다 '혼란함'의 정서가 가득 차 있다. 읽고 난 직후의 감상 역시 이 '혼란함'이었고, 글을 남기기 위해서는 몇 번 더 읽으면서 서사의 구조를 파악하고 여러 요소를 나름대로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만화의 서사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만화가 던지는 여러 질문들 중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엄마'라는 캐릭터에 대한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

엄마라는 이름의 프로듀서

만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흥미롭지만, 처음부터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주인공의 엄마 캐릭터였다. 주인공 리리코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다. 리리코의 친엄마는 도쿄가 아닌 지방 어딘가에서 리리코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이야기 전반에 등장하며 '엄마'로 불리는 캐릭터는, 상경한 리리코를 '발견'하고, 성형 시켜 연예인으로 데뷔시킨 인물이다. 일종의 연예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캐릭터는 '사장님', '프로듀서님'이 아닌 '엄마'로 불릴까? 아마도 상징적인 의미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많은 경우) 다 크고 나서도 나와 정서적 유대를 가지며 '돌봐주는' 포지션의 사람이다. 이 이야기 속 '엄마'가 리리코를 발견하여 연예인으로 키우고, 데뷔하고도 지속적으로 매니징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어도 상징적, 사회적 의미의 엄마로 이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파괴하는 사랑

다만 리리코와 엄마 사이 관계를 보통 모녀의 그것으로 치환할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엄마는 리리코를 연예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하게 했다. 그것도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생긴 대로인 건 뼈랑 안구, 손톱, 머리카락, 귀랑 거기뿐'인 수준으로 말이다(이런 의문의 대수술을 감행한 불법 시술 클리닉은, 작품 내 서사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또 다른 요소이다). 처음 봤을 때 '뚱뚱하고 커다랗고 끔찍하게 못 생겼지만', 뼈대 만큼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리리코를, 엄마는 발굴하여 개조했다. 이런 파괴적인 수준의 성형 수술에 '새로 태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탄생의 유비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은유의 수준에서이다. 실제로 일어날 경우 이것은 폭력에 가까운 파괴적 행위이다. 진짜 엄마라면, 자식에게 하기 힘든 일이라는 뜻이다. 힘들어 하는 리리코를 착취하는 것과 붙잡기 위해 감행하는 가스 라이팅은 이 모녀에게 일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파괴적 행위가 감행된 이유는, (이 단계에서는 추상적이기 그지없게 들리지만,)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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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유대

리리코와 엄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리리코의 엄마는 사실 젊은 시절 리리코와 같은 연예인이었다. 아름다웠고, 사랑 받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시들고 더 이상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리리코라는 이름의 자기 분신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대중의 사랑을 계속해서 영위하고자 한다. 이것이 서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엄마' 캐릭터의 욕망이다. 이 때문에 엄마와 리리코는 두 개의 다른 존재로 단순하게 분리하기 어려운, 기묘한 의존 및 자아 의탁 관계에 있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질문: 이런 리리코와 '엄마'의 관계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보통의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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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

리리코와 엄마 사이를 잇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끈은, 가만히 있지 않고 요동친다. 엄마는 리리코를 붙잡아 그 자리에 박제하려고 한다. 속은 썩어 들어갈지언정 표면은 반짝이고, 때문에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존재로서 말이다. 이 몸부림이 더 이상 연예 기획사의 프로듀서가 보이는 그것과는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여럿 있다. 투자금을 환수하지 못해도, 유지 보수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도, 끝내 사업에 악영향만 미칠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져도, 엄마는 리리코를 '내가 태어나게 했으니 책임진다'고 말한다. 리리코가 엄마에게 단순 사업 아이템이 아닌 분신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리리코는, 엄마에게서 독립된 존재로서 주체성을 확립하고 싶어한다. 작중 리리코는 점점 망가져 간다. 이 몰락의 표면적 이유는 아름다운 외모의 쇠퇴지만, 그녀가 끊임없이 되뇌는 대사를 보면 실질적 이유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리리코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안다는 것은 우선 리리코가 어떤 통합되고 일관된 주체성을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등장인물 이시다에 따르면 리리코는 '욕망의 몽타주'이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익명의 다수가 지닌 제각각의 욕망이 조각조각 이어붙어 탄생한 존재. 리리코라는 존재 자체가 타인의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태생적으로 주체성과는 거리가 있다.


스크린샷 2025-11-11 오후 5.16.45.png 이야기 중 리리코는 자신의 주체성 존재 여부에 혼란을 느끼고 집착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다



엄마, 여자

소년 만화 속 '엄마'

이 만화에서 내가 '엄마'라는 캐릭터에 유난히 주목하게 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주로 소년 만화를 많이 보는 입장에서 접한 만화 속 '엄마' 캐릭터는 굉장히 평면적인 모습이었는데, <헬터 스켈터>의 엄마 캐릭터와 이와 달라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소년 만화의 엄마 캐릭터는 많은 경우, '집'이나 '고향', '안식처' 등 장소적 은유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온화하게 웃으며 타이르고,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내어주는 존재. 그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의 '엄마'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 뒤에 있는 캐릭터의 개성과 개인적 서사가 드러나는 일은 거의 없다.


소년 만화 속 이런 '엄마' 캐릭터는, '아버지' 캐릭터와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소년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물론 중요한 존재이다. (프로이트적으로) 간단히 말해서, 소년은 아버지를 넘어서 섬으로서 성장하고 한 사람의 남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리리코가 그토록 바랐던 주체성의 획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 만화 속 아버지 캐릭터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들의 곁을 지키며 그를 이끌고 방향을 제시하는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아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시련을 주는 경우가 많다. 소년 만화가 속해 있는 서브 컬처 장르가 반-주류 규범적 정신을 가진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규범의 상징인 아버지의 부재는 자연스러운 장르적 특성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국 소년은 아버지를 찾고(관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그 뜻을 이해하면서 계승하거나, 끝까지 대립하는 방식 등으로 아버지와 관계한다.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 아닌 여자

<헬터 스켈터>에는 아버지 캐릭터가 부재한다. 단순히 모습을 안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배제되어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리리코가 기존 인간 사회에서 이해되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형성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녀에게는 뛰어넘을 것이 없다. 어른 캐릭터인 '엄마'는 그녀에게 극복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다. 엄마 역시도 혼란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헬터 스켈터>의 엄마 캐릭터는, 엄마가 아닌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만큼 단단하고 주체적일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남자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개념으로서의) 여자가 아닌, 욕망과 혼돈 속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여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자의 모습이, 보다 입체적인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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