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잇대의 누구나 다 그렇듯, "어릴 적부터 크고 알려진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직장에 들어가야 잘 사는 것이다" 등등의 말을 듣고 자랐다. 틀린 말은 아니다. 회사가 크고 좋을수록 복지와 페이가 좋으니까. 다만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길은 다양하고, 세상은 넓다.
저런 말을 듣고 살아서일까, 나는 자꾸 여기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쉽게 들지 않았다. 현재의 직장은 규모와 인지도, 복지와 페이, 워라벨, 친절한 사람들, 재밌는 문화, 좋은 상사 등등 모두 다 좋은 곳이다. 미국 회사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직장의 안정성까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곳이고,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사람들이 꽤나 부러워한다. 유니콘 직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나는 만족이 되지 않고 자꾸만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철딱서니가 없는 걸까?
이곳에서 몇 년이고 있으면서 회사 외의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편하게 살 수도 있다. 어차피 워라밸이 괜찮으니 회사에 있는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왜 나는 기를 쓰고 더 탐험을 하고 싶어 하는가? 도대체 뭘 위해서 자꾸 더 올라가고 싶어 하고, 더 큰 회사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저 말이 내 삶과 열망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성격인 걸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삶의 방향과 길이 존재하는데, 왜 자꾸 나는 그 한정된 길을 위해 나아가려고 하는 걸까? 왜 이미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 자꾸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 무언가를 더 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외국인인 나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네이티브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 세상엔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나 자신이 얼마나 모자라는지가 보이고, 더 열심히 해서 그 간극을 채워 나가고 싶은데 여기에만 집중하기엔 내가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더라.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두고 대학원과 저기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나에겐 끝이 없는 집안일, 요리, 운동, 회사일 등등이 있다. 내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적인지라, 차라리 현재 갖고 있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살면 현재 있는 것들도 유지하며 나 자신도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 짜증과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부모님 집이나 룸렌트로 방한칸에 얹혀살며 내 분야 안의 할 일 외에는 책임질 일들이 없던 그때가 훨씬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단기간으로 성장을 이루어 내기도 좋았다.
작은 거에도 만족하며 행복히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내 욕망이 문제인 건가 싶기도 하고...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른 삶의 방향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면 편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