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노트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by 밤비

대학원 수업과 회사를 병행하니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나는 항상 데드라인에 쫓겨 지냈고, 스트레스에 차 있었다.

자연스레 집안일에도 소홀하게 되었다.


6월, 이직 인터뷰

A 학점을 끝으로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된 6월 초,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고 여름방학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까지 틈틈이 모두 작성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뒤에 미국의 대형기업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인터뷰라니? 번번이 들려오는 리젝 이메일에 익숙해있던 터였는데, 큰 기업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인터뷰 프로세스에만 한 달을 쏟았다. 답장과 프로세스 속도가 꽤나 빨라서 긍정적이었지만, 오랜만에 인터뷰 준비를 하다 보니 그 빠른 프로세스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준비 시간도 짧게 느껴지고, 본업과 병행하며 하려니 힘이 들었다. 면접 시간과 날짜를 잡는 것도 일을 병행하니까 쉽지가 않더라. 다들 이직은 어떻게 하는 거람?


7월, 기다림과 후회

어찌어찌 3차 인터뷰까지 모두 마쳤다. 이게 마지막 관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너무 절었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나온 것 같다. 그간 너무나 지쳐있던 터라 다 끝내고 난 직후는 정말 후련했고, 이제 모두 끝나서 너무나 좋았고 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마지막 인터뷰부터 현재까지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회사는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이 부분을 더 잘했더라면, 그때 이런 말을 했었으면,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에 내 어필이나 한번 더 할걸, 하는 후회가 하루하루 쌓였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해... 이미 다 지나갔는데. 이날 면접 보러 가기 전부터 그날 증후군이 겹치는 바람에 매일 너무 피곤했고, 집중도 안되고, 뇌에는 안개가 끼고, 시간 관계없이 꾸벅꾸벅 졸던 시기였는데 면접 보는 날도 다르지 않았다. 보러 가는 것 자체가 귀찮을 정도였으니...


여하튼 지금 생각하면 망쳐버린 면접인 것 같다. 나는 PMS를 탓했고, 거기에 굴복해 버린 나를 탓했고, 준비 미숙인 나를 탓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결과가 늦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애플리케이션 상태를 확인하려 잡 포털만 계속 들락날락하는 나날을 보냈다. 잡 애플리케이션 상태는 현재까지 변화 없이 계속 under consideration이다.


무브온 해야 하는데... 자꾸 작은 희망이 나를 잡는다. 이번 주에는 연락이 오겠지 하면서.


느낀 점

이번에 확실히 이직 준비를 겪으며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 잡을 잡는 것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이직도 힘들다는 점.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복지와 직원 케어, 일하는 환경 등등이 좋다는 것.

항상 불평불만 했어도 밖에 나와보니, 나는 꽤나 좋은 work and life balance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출퇴근시간이 껴도 편도 20분 거리에 도로가 난잡하지도 않은 지역이며, 내가 힘들긴 해도 학교를 병행할 수 있는 것, 일이 없을 경우 눈치껏 딴짓이 가능한 것 등등)

집과 가정이 있는 경우 아무것도 없는 싱글보다 이직 옵션이 현저히 적어진다는 것.

남편이 나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거라고 항상 얘기했었는데, 나는 toxic 하다고 불평불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직접 겪어보고 깨달았다. 이 정도면 잘 잡은 거구나, 이렇게 챙겨주고 분위기 좋은 회사가 많이 없구나 하고. 이래서 현재회사에 장기 근속자들이 많은가 보다. 물론 내 또래들의 로테이션 주기는 2-3년 정도이지만, 40대만 근접해도 이곳에서 은퇴를 생각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50대는 말할 것도 없이 장기근속이고, 그 이상의 나잇대도 많다.


나는 아직 젊기에 이곳에서 내 인생을 보낼 생각은 없다. 벌써 3년 차인데, 이 경험을 시작으로 더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봐야겠다. 이번의 경험에 대한 쓴 낙담은 그만 느끼고...


30대 초반인 나의 고민

많은 회사들이 하이브리드나 온사이트로 바꾼 것 때문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옵션이 현저히 적어진 게 너무나 아쉽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인생 뭐 있냐 - 집 가깝고, 돈 꼬박꼬박 잘 나오고, 탄탄하고, 이 정도면 꽤 알려져 있는 브랜드에, 팀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복지나 분위기도 괜찮고, 딱히 별 문제없는 이 회사에 그냥 만족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며 장기로 다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하지만 고인 물이 되기는 싫고, 한 군데에만 가만히 있는 것도 싫은데...


30대 초반인 지금, 나는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전까지는 내 생존과 안위만을 생각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지금은 숨을 고르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가끔가다 생각해 보는데 사실 아직까지 뚜렷한 답이 나오진 않았다.


안정적인 거? 좋다. 그런데 같은 것만 계속하자니 발전이 없는 느낌이다. 나는 아직 젊은데... 여기서 안주하기에는 내가 아깝고 아쉽다. 혼자만을 생각했다면 그냥 관두고 조금 쉬다가 다른 곳으로 구직활동을 재개하는 옵션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인생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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