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우리의 약속을 다시 흔든다

by 공부하는 꽃사슴

심리적 계약, 보이지 않는 약속의 변화는 우리가 경험한 위기와 충격이 만들어냈습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이 그랬죠.

그때마다 회사와 개인의 관계, 보이지 않는 약속은 다시 쓰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일터는 조용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기술과 일하는 방식이 그 변화를 이끌고 있죠.



김 대리는 집 앞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습니다.

"이번 주 성과 목표가 설정되었습니다."

화면에 뜬 알림은 AI가 지난 분기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으로 배정한 목표였습니다.


부산에서 원격 근무 중인 동료는 서울 본사 팀원들과 화상회의로만 만나고,

분기 성과평가는 시스템이 처리합니다.

팀장의 피드백은 슬랙 메시지로 전달됩니다.


이 평범한 일상 속에는 심리적 계약의 미래를 바꿀 거대한 동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과 유연화된 근무형태입니다.
이 동력은 달라진 약속의 세 가지 흐름을 더 빠르게, 더 분명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09화 달라진 약속이 향하는 세 가지 방향



"이제 상사 눈치 안 봐도 되겠네."

AI 평가를 도입한다는 소식에 직원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어떤 지표와 가중치로 점수가 나왔는지 투명했고,

관리자 개인의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AI는 관리자보다 실수를 더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직원들은 평가의 '정확성'보다 '공정한 대우'에 더 높은 수용성을 보입니다.


문제는 AI가 '맥락'을 읽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주요 고객사 정책이 바뀌어 프로젝트 일정이 밀렸다고 해보겠습니다.

관리자라면 "어쩔 수 없었지"라며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평가맥락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그냥 '일정 지연'으로만 기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팀워크, 멘토링, 창의적 제안 같은 '보이지 않는 기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니어 개발자의 코드평가는 정확히 측정되지만,

팀 분위기 개선 노력이나 조언은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한가지 간과할 수 있는 점은

AI 평가가 회사와 구성원 간의 관계를 더욱 거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측정 가능한 성과와 보상의 관계가 보다 명확해지면서, '주고받는 관계'가 더 선명해지는 겁니다.

AI가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수록,

직원들도 '측정되는 것'에만 신경 쓰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단순히 공정하고 정교한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구성원간 사이 심리적 계약, 즉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성격을

보다 ‘성과 교환' 중심의 거래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구조적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는 많은 직장인의 표준 근무형태가 되었습니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직원들에게 업무 시간과 장소에 대한 유연성을 제공해 자율성을 증대시킵니다.

그리고 이 자율성은 성과향상과 이직률 감소에도 크게 기여하죠.


스탠포드대 니콜라스 블룸(Nicholas Bloom) 교수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블룸 교수는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중 하나인 Ctrip을 대상으로 대규모 무작위 통제 실험을 합니다.

9개월간 진행된 연구에서 재택근무자들의 성과는

사무실 근무자들보다 13% 더 높고 이직률은 50%가량 낮았습니다.

재택근무를 통해 직원당 약 $2,000의 사무실 비용절감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후 회사가 직원들에게 자신의 근무환경을 선택하게 했더니

재택근무를 선택한 그룹은 업무성과가 22%까지 증가했습니다.

재택근무 자체보다 근무환경 선택권이 더 큰 효과를 낸 것입니다.



하지만 카페에서 일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김 대리는 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이 회사 사람 맞나?"

출퇴근 부담이 적어지고 신경 쓰이는 일부 팀원 얼굴을 보지 않으니

편하기도 하지만 연결감은 옅어집니다.


원격근무 일수가 늘어날수록 직업적 고립감이 심해질 수 있다는 연구들은 다수 존재합니다.

앞서 살펴본 블룸 교수의 연구에서도 재택근무자들은 성과가 높았지만

승진 기회는 사무실 근무자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재택근무자는 관리자 눈에 덜 띈다”는 인식이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셈입니다.


원격근무의 장점 뒤에는 조직과의 거리감, 평가와 승진에 불리한 현실 같은

조직 내 ‘관계 변화와 소속감 약화’라는 이면이 존재합니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심리적 계약의 무게중심을

'조직 가치'에서 '개인 가치'로 더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온기보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자율성을

더 중시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이런 환경에서 ‘나의 커리어’와 ‘회사 내 존재감’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 균형을 잡아줄 조직 차원의 구조적 지원이 필수적인 셈입니다.



AI 성과평가와 유연 근무는 일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과 개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고 있습니다.
결국 두 변화는 회사와 개인 사이의 관계 규칙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하나의 약속으로 설명되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 각자의 계약이 공존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술이 바뀌면서 관계도 함께 바뀝니다.

우리의 일터는 지금 그 흐름 속에 있습니다.

달라진 심리적 계약, 그 보이지 않는 약속은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쓰고, 다시 쓰이는 중입니다.
이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된 현실이죠.


이제 질문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회사는 어떤 약속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나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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