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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별 Jan 12. 2021

[실실실] 3. 우리 참 행복했구나

2021년도 순간에 충실할 것


2020년 서른아홉, 내 30대의 마지막!

둘째로 이제 홀가분하게 출산 졸업하는 듯했으나 계획에 없던 셋째를 맞이하며 놀람도 잠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내 인생,

아니 전 세계인들의 인생 최악의 녀석을 만나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covid 19.


아마 많은 이들이 “코로나 개객끼” 하며 집콕을 하고 마스크를 쟁이고 손 소독을 하느라 손이 부르트고

소중한 이들을 마음과는 다르게 멀리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부모님들의 생신을 간소화하거나 못 찾아뵈었고(잠시 코로나가 소강상태였던 여름, 칠순을 맞은 친정아버지만 챙겨드리고 양가 부모님 모두 자축 상태 ㅠㅠ) 지인은 물론 형제자매와도 몇 번 보지 않았다.



하지만 12월 31일, 문득 올 한 해는 어떻게 살았나 인스타그램이며 휴대폰 사진첩을 둘러보니

그 지독한 칩거생활 중에도, 짬이 나면 사람 없는

야외로 바리바리 싸서 다닌 흔적들이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했구나!


찌는 듯이 더웠던 통도사, 여기서 어이없는 그림 체험으로 4천원을 기부(날릴) 할 줄이야
“아빠와 함께 하는 전국 절 탐방” 처럼 나온 뒷모습 ㅎㅎ


특히 코로나가 잠시 소강상태였던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줄 모르고 떠난

단 3일간의 휴가는 엄청난 양의 소나기를 만나서

별 것도 못했지만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통도사 민화 전시, 처음 본 민화 앞에서 “어흥 어흥” 하는 둘째
급하게 휴가를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바꾸는 바람에 급히 잡은 경주의 잘 안 알려진 이 호텔은 늘 온돌방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적절했다. 이리 보니 비주얼은 절대 호텔 같지 않다만 ㅋ
멀리 가지 않고 그저 호텔 앞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멀리 떠나온 것 같던 그 날의 시간이 생각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기 떠오르는 둘째의 모습. 둘째가 가장 좋아하던 원피스.


낯선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도 흥미로움을

느끼며 작은 행복을 만들어내던 아이들의 모습에


 왜 진작 용기 내어 떠나지 못했을까?

코로나 녀석이 더 원망스러웠다.

녀석만 아니었으면 아이들과 더 많이

더 자주 다녔을 텐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유연했고

기대 이상으로 의젓하거나

우리보다 더 즐길 줄 알았다.


물론 그 당시엔 무척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힘든 기억은 하나도 없고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는 “추억”만 남아있다.

딱 3일의 휴가, 그리고 짧은 여름날의 추억들...


집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서 걸었던 날

매일 아침 임신 중이라 배부른 엄마가 등원 길을 편히 가려고 손잡으라고 하면 억지로 손을 잡고 걸어가던 실실 남매, 요즘도 똑같다. 얼마 못 가 손을 놓고 각자 갈 길을 간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뒷모습이 너무 예뻐 힘든 현실도 잊고 짧은 여행처럼 즐겼다.

사람 잘 없는 이름 아침이나 저녁시간 바닷가 한 구석에 앉아하는 모래놀이는 우리가 2020년 제일 많이 한 야외활동이었다. 차에는 늘 생수 한 병과

모래놀이용 장난감이 실려있었다.


물놀이 좋아하는 실실 남매를 위해

주말 내내 드라이브만 하며 사람들 잘 안 몰리는

바닷가를 찾아서 딱 한 번 해수욕을 시켜주기도 했지. 처음 바다에 들어갔던 둘째는 입술이 퍼레지면서도 집에 안 가려고 모래 위에서 뒹굴며 울었었다.


돌아보니 의외로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2020년이었다. 사진이 여름만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코로나가 잠시 잊히려 하던 여름,

잽싸게, 짧고도 강렬하게 즐겼기에(그것도 소심해서 온갖 검색을 다하며 사람 최소한으로 없는 곳, 없을 시간을 피해 다녔다.)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봄, 가을, 겨울의 우리 가족에게 큰 추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 잘 없는 바닷가 모래 위 아니면 구석진 아주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 아니면 솔밭,

아니면 시댁 축사가 우리의 외출의 전부였다.

그 외엔 만수르도 아닌데 기름을 써가며 아이들을 태워 드라이브만 주야장천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첩을 다시 돌아보니 어느 계절이든

행복하고 또 재미있어 보였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실실 남매가 더 어리고 귀엽고 예뻤고

남편과 나는 조금 더 젊고 미숙한 부모였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 시간은 참 아름답게 남아있었다.


올해 2021년 현재, 슬프게도 현실은

더 심각한 상황이고 한파가 몰아쳐

우리 가족은 지난 추억을 곱씹으며 언제쯤

다시 아이들이 “우리 방에 가자.” 하던,

밖에서 자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하지만 매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지난 추억을 녹이고 녹여먹으며 기다리려 한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추억을 쌓는 날을.


마지막으로 지난여름 너무나 예뻤던 우리 둘째,

튼실이의 사진을 자랑하며 마무리한다.


얼른 와라! 2021년 수많은 날들아.

이젠 매 순간 우리가 신나게 즐기며 살아줄게!


비록 아직도 마스크를 피부처럼 여기고

백신과 치료제는 먼 이야기고

작년과 달리 더 심각하게 사람을 피해야 할지라도.


우리는 기어코 어떻게든 즐겨볼게.

실실실남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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