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봄은 늦게 온다.

아프지 않고 웃을 수 있기를

by 밤돌

봄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초등학교 소풍이었나, 대학교 시절 벚꽃 아래에서였나. 하지만 요즘은 헷갈린다. 봄이 좋아서였는지, 봄에 있었던 일이 좋아서였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태어나고는 더 까다로워졌다. 미세먼지와 환절기 감기 때문이다. 봄이라고 설렘을 말하는 매체들을 보면 조금 짜증도 난다.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3월이 되어 유치원은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오며, 낯선 감기 바이러스도 묻혀왔다. 처음엔 콧물이 찔끔 났고, 어느 날 목이 쉬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숨을 잘 못 쉬겠다고 밤새도록 울었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고통의 주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며칠을 또 안절부절못하며 아들을 돌봐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째 날 저녁만 지나면 증상이 줄어드는 점이다. 이틀만 잘 넘기길 바랐다. 미열이 좀 있었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두 밤을 자고 난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내렸다. 아들은 여유가 넘쳤다.


“괜찮아?”

“괜찮아. 딩딩 딩딩딩~”


철 지난 유행어를 흥얼거리는 걸 보니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한시름 놓았다. 점심쯤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와 있었다. 아들은 유치원에 잘 갔지만 아내가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번엔 잘 넘어가나 했더니 아내가 치명타를 입었다.


아내와 아들은 번갈아 선두 주자가 되었다가 다음 타자가 되곤 했다. 엄마 없이 못 사는 아들이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연타석 감기는 좀 고달프다. 연이어 신경을 쓰다 보면 내가 다음 차례가 되기도 한다. 자칫하다가 세 명 다 골골거릴 수가 있다.


아내가 병원에 다녀오더니 장염 증상인 것 같다고 했다. 미음을 먹어야 한다기에 아들과 함께 쌀을 갈고 쌀가루를 끓였다 아들의 이유식을 만들 때가 떠올랐다. 이유식만 먹어도 토하던 아들은, 어느덧 쑥쑥 자라서 믹서기 소리를 흉내 내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아아! 아-! 아아! 아-!”


믹서기 묘사를 기가 막히게 하는 아들을 뒤로하고 아내는 또 화장실로 향했다. 아들은 엄마가 먹던 미음에 관심을 보이며 식탁에 앉았다. 엄마는 힘들어하는데 아들은 오히려 식욕이 폭발했다. 이틀 동안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듯 내리 세 그릇을 비웠다. 감기가 다 나은 아들은 평소처럼 해맑고 유쾌했다. 숟가락을 달그락 거리며 화장실 쪽도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가 신나게 토하고 있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유치원에서 배워온 표현일까. 아이는 늘 엉뚱한 표현으로 우리를 웃게 한다. 하긴, 세상을 탐구하며 얻는 아들의 배움에 비하면 감기는 사소한 부작용이다. 하지만 힘 없이 누워있는 가족을 보면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번 봄은 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봄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아 있었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 아래, 건강한 아들이 해맑게 웃던 순간. 그건 분명, 좋은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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