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수영장에 가요!

아빠가 잃어버린 감정

by 밤돌

아들과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목욕탕 첫날 다소곳하게 들어서던 아들은 이제 안방처럼 목욕탕을 휘젓는다. 혼자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잘 논다. 물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며 발장구도 제법 힘차게 하길래, 수영을 시켜볼까 싶었다.

“수영 배워볼래?”

“수영 잘해! 봐봐!”


아들은 세차게 발을 굴렀다. 어린이의 요란한 발길질에 목욕탕 물은 영문도 모른 채 비명을 질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빠 봐.”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잠수를 하고 냉탕 반대편에서 솟아올랐다. 돌아올 때는 배영으로 돌아왔다.


“봤지? 수영 배우면 아주 빠르게 헤엄칠 수 있어”

“나.... 수영 잘해.”


확연히 작아진 목소리로 말하더니, 물에 빠졌는지 수영하는 건지 모를 동작을 선보였다. 나는 아들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가지 동작을 선보였다. 아들에게는 내가 펠프스였다. 아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몰아붙이면 넘어올 것 같았지만 생각을 정리하도록 기다려주었다. 집에 가서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수영 배울래? 선생님한테 배우면 아빠보다 더 잘하고 빠르게 수영할 수 있어.”


아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응, 갈래.”


다음날, 아내는 곧장 아들을 데리고 가서 수업을 예약했다. 아들은 수영장이 마음에 쏙 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수영장 가는 날만 기다렸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영장에 가려면 몇 밤을 더 자야 하는지 세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며 떠벌리고 다녔다.


드디어 대망의 수요일, 유치원 2층에서 내려오는 아들은 상기된 얼굴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나! 오늘 수영장에 가요! 수영 배워요!”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노래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이인데, 이럴 때는 동네방네 소리를 지른다. 아들의 수영장 출사표에 유연하게 호응해 주시는 유치원 선생님께 애매한 미소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얼른 아들을 챙겨 나왔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수영장이 아닌 검도장이었지만. 첫 수업이 아직도 기억난다. 마룻바닥, 타격대, 줄 지어선 죽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죽도의 부딪히는 소리와 사범님의 호탕한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검도가 다른 곳보다 유난히 기억난 이유는 아들의 수영장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촌형이 검도복과 호구를 미리 물려준 탓에 검도장을 가기 전, 설렘이 한껏 고조되었다.


방법도 모르면서 호구를 얼굴과 가슴에 얹어보고, 죽도로 방구석의 무언가를 내리치며 설레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설렘을 해소한 그 순간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요즘은 그런 설렘을 느끼기 어렵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기대감 대신 걱정이 먼저 고개를 든다. '해봤자 비슷하겠지'라는 기시감은 새로움의 빛을 바라게 하고, 뒤따라올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라서 '시작' 버튼을 망설이게 만든다. 결국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어, 늘 하던 것만 반복하려는 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아들은 설렘 그 자체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설레며 즐거워한다.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는 일도 얇게 쪼개어 느껴보고 기뻐한다. 이게 바로 때 묻지 않은 어린이인가.


수영을 등록한 첫날, 사장님은 아들에게 번쩍번쩍하는 에나멜 크로스백을 부여했다. 아들은 그 가방을 수영장 다니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금배지 정도로 여겼다. 지금까지도 수영장 가는 날이면, 아들은 가방을 챔피언 벨트처럼 배 앞에 두고 외친다.


“나! 오늘 수영장에 가요!”


아들은 오늘도 처음처럼 설렌다. 나는 그 마음이 조금, 아니 눈부시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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