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드라마를 여러 번 본다

by 밤개


누군가는 똑같은 내용을 왜 두 번 세 번 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장면을 보고, 지난번에 미처 보지 못했던 순간을 보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참 신기한 일이다.


처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는 의사들보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환자들에게 더 몰입해서 봤다. 그런데 다시 보니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 왔다. 아프고 절망적이고 예민한 상태의 환자들을 상대하는 의사들의 태도가 보였다. 처음 <헬프>를 봤을 때에는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만 보였는데, 다시 보니 백인 여성들의 불행한 삶까지 보였다.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더 세세한 내용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있겠지만 주로 그 작품을 보고 있을 당시 내 상황, 생각, 고민들에 따라서 작품에서 보게 되는 장면과 느끼게 되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응답하라 1988>을 볼 때에는 무조건 어남류였고 사람들이 택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가까이에 있지만 늘 망설이는 정환이의 모습과 바보같아 보여도 덕선이에게 직진하는 택이의 모습이 보였고 어남택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물론 그럼에도 난 어남류) 22살이 되어서 <멜로가 체질>을 다시 봤을 때,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한주와 재훈의 대화 장면이 마음을 울렸다.


전에는 있는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대사 하나가 이번에는 가슴에 박힐 수 있다는 게, 같은 대사 같은 장면에서 전보다 더 생생히 주인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묘하면서 좋다. 같은 드라마를 몇 번씩 다시 보고 있던 순간에, 나는 단 한 번도 지난번에 드라마를 볼 때와 똑같은 나였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 번도 같지 않 았던 나는, 같은 드라마를 여러 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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