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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Aug 03. 2020

내 공간에 너를 들이는 일은

독립한 지 한 달 반이 됐다. 혼자의 공간을 갖게 되고 많이 들은 말은 '언제 초대할 거야? 궁금하다' 같은 말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남을 초대해야 하는 거지? 갑자기 의문이 들지만 잠깐 접어두자.)


"어어, 아직 정리가 안 됐어"라고 대충 둘러대지만 내 공간에 타인을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급한 대로 마련한 티가 나는 서랍장이 됐든, 아무렇게나 쌓아둔 신발이 됐든, 아직 풀지도 않은 책 뭉치가 됐든, 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흔적으로 낡은 그 어떤 것이든, 발바닥에 쩍 달라붙는 장판이든 간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구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

  

요즘 들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자친구에게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내 공간에 너를 들이는 일은, 내 바닥을 보여주는 일 같다고. 내 전부를 꺼내 보이는 것 같다고. 내게도 숨기고 싶은 무엇이 있다고. 어쩌면 게으름일지도, 영영 숨기고 싶은 지저분한 구석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까지만 이야기했다. 다행히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랑은 말이 통할 것 같았어.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마음 같아선 활짝 열어두고 싶다고.'


그치만 왠지 싫다. 나라는 사람이 이런 곳에 사는구나. 이런 데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씻고, 머리를 말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밥을 먹겠구나. 이런 것이 이제 너에게는 선연히 그려질 테니까.


아직은 그렇다. 내 공간은 내 것으로 두고 싶다. 씻고, 자고, 먹고, 글 쓰고, 노래 듣고, 울고, 아무렇게나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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