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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Sep 22. 2020

구렁텅이에 처박힌 것 같은 날에는

괜찮은 처방전이 있다

요즘 '이런 일까지 일어난다고? 인생 참...' 싶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애써 무시하려고 이겨내려고 했는데 자꾸만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펼쳐졌다. 아, 참 재밌다 인생. 이대로 2020년이 가는 건가 생각했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다가 노트북이 고장 나 버리는 바람에 급하게 집 앞 PC방에 가서 업무를 마무리했다. 국내에서는 부품을 구할 수 없어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는, 아니 공수한다 해도 부품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서비스센터 아저씨의 절망적인지 아닌지 모를 알쏭달쏭한 말씀을 들은 나는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아니, 하루아침에 이럴 수가 있나. 뭐 이런...' 같은 생각을 하다가, 어찌어찌 회사 메일을 열어 숨을 돌린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스펙터클한 하루의 가운데서 요즘 만나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인생 너무 재밌다. 흐하하."


오늘 하루도 정말 쉽지 않군, 생각했다. 번쩍이는 빛과 요란한 소리를 내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남은 회사 업무를 해냈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서 밥을 해 먹고 씻으려는데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아, 참참. 너는 정말 둥글둥글하고 널찍한 사람이었지. 좋네. 그래서 내가 너를 만나기로 했었지.


네 말을 듣고 보니 꼭 내 인생이 구렁텅이에 처박힌 것 같지는 않았다. 간만에 망했다 싶은 거 말고 괜찮았던 것, 괜찮아진 것 같은 것들을 떠올려봤다. 음, 일단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은 사람이어서 나를 이해해줘서 이런 하루도 다행히 잘 보냈다. 2년 동안 매일 먹는 약은 이제 증상이 많이 괜찮아져서 이제 이틀에 한 번씩 먹는다. 잔고는 사라졌지만 작은 방은 얻었다. 그리고....  


아니 근데, 그 말 내가 나한테 자주 하는 말인데. 왜 오늘 나한테 안 했지? 희한하네. 유독 하루를 망친 것 같은 날, 자책하는 습관이 잦은 나에게 나는 스스로 이런 말들을 되뇌곤 했었다.


'아, 오늘은 잘 못했네, 나 진짜 바보 같았다.'

'아니야. 그래도 이런 날도 있어야지. 오늘은 연습이었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마인드는 작은 실수들을 곱씹으며 이불을 뻥뻥 차는 나에게, 매일의 크고 작은 불행들에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나에게  괜찮은 처방전이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저번엔 잘했잖아, 이번엔 못할 수도 있지. 이번 일도 금방 해결될 거야.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 왠지 괜찮아진다.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에 습관적으로 빠지려는 나에게 아주 좋은 마인드인데. 잘 알면서도, 요 몇 달간 잊고 지냈다. 또다시 잊어버릴까 싶어 이렇게 적어둔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다고.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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