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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Nov 19. 2020

우리, 같이 늙어가자

네가 다시 와서 좋아.

너는 힘들다고 했다. 늘 반짝 빛났던 너에게도 그늘진 부분이 있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벌써 그게 10년도 더 된 일이다. 웃고, 먹고, 시험 성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전부였던 그 시절의 10대에게, 그만큼의 그늘이 질 수 있는지 상상한 적이 없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너는 점점 더 나빠졌다고 했다. 깜빡 잠들었다며 모임에 늦고, 혹은 아예 밤을 새웠다고 이야기하고, 점점 눈 밑이 퀭해지는 너는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아팠던 것 같다. 너는 아무렇지 않은 말에도 상처 받곤 했다. 너에게는 이제 더는 평범한 위로가 힘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너는 사람들이 던진 모난 말들로 마음이 자주 아팠지만 나에게는 동글하고 예쁜 조약돌 같은 말을 종종 꺼내 쥐어줬다. 


'너는 참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구나.' 

'언젠가 네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들은 참 좋겠다.' 

'어딘가에 글을 써보는 건 어때.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데다가.' 

(사실 브런치 개설의 팔 할은 너의 응원 덕분이었다. 언젠가 말해줘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괴로워하는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나는 좋았다. 듣는 것만으로 도움이 돼줄 수 있다면 얼마든 들어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같이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너와 이야기하면 마음 어딘가가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깊어졌던 것 같다. 나는 이제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가서 닿는 모습을 마음으로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너는,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닫고 돌연 숨어버렸다. 


네가 숨은 시간 동안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어디서 밥은 먹고 지내는 건가, 큰일이 나지는 않았겠지. 먼저 손 내밀지 못한 데에 대한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네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이야기하다가도 네가 없는 우리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너는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아프고 힘들다고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환대를 해주고 싶었다. 먼저 다시 연락해줘서 고맙다는 말, 어떤 것도 괜찮다는 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방법도 찾아보겠다는 말을 했다. 


너는 계속 나빠졌다고 했지만, 변한 것 없이 그대로라고 했지만, 홀로 있던 너는 단단해져 있었다. 자꾸 넘어졌고 외면당했지만 계속해보겠다고 했다. 곧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로. 실은 그동안 이런 일이 있었어, 가만가만 이야기했다. 한 시간여의 시간 동안 너는 몇 번이고 숨을 다시 골랐다. 과연 다시 두드리기까지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까. 


혼자 붙잡고 있었을 끈을 놓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에라도 털어두어야겠다. 같이 늙어가자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하자고. 


2년 만에 너를 다시 만난 오늘 밤은 왠지 따뜻하고 평온하다. 내일은 부디 맑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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