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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Mar 19. 2021

퇴사를 하루 앞둔 사람의 마음

이직, 그게 뭐라고(3)


n년 전 어느 날, '저를 꼭 뽑아주세요. 뽑아만 주시면...'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 합격 통지를 받은 날 뛸듯이 기뻤던 마음도, 입사 첫날의 낯선 공기도, 상사가 나눠준 덕담도 생생히 기억난다.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천천히 간다고 생각하세요." 


'천천히, 천천히....' 그 말에도 힘이 있었는지, 나는 꽤 오래 이곳에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의 반 이상을 떠나보냈고, 그간 나와 일을 할 같은 팀 동료가 세 차례나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이곳에서 무려 n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게 이 일이 맞을까 의심하기도 했고, 과분한 업무를 맡은 것 같아 밑도 끝도 없이 두렵기도 했다. 일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일과 내 마음을 떼어둔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때로 든든한 울타리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을 말하는 데에 가장 큰 요인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불안하던 새내기 시절을 거쳐, 이 부서의 거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선임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나는 내일이면 회사를 떠난다. 넉넉하지 않은 인수인계 기간 동안 n년이라는 시간을 모두 정리해서 전달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이고, 우리 부서의 고민은 무엇인지. 회사에서는 여러분에게 어떤 걸 기대하고 있는지, 이곳에서 이 일을 하려면 꼭 필요한 마음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동안은 그렇게 떠나고 싶더니, 막상 이직을 확정하고 퇴사일을 못 박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사실은 나 없어도 되려나 하는 마음으로 한동안은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따라오는 후임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들에게는 내가 언제인가부터 잃어버린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보인 순간 마음이 왠지 괜찮아졌다. 


오늘은 책상 구석에 자리하던 자잘한 짐들을 집으로 옮기면서 그곳에 남아 있던 마음도 옮겼다. 이제야 비로소 떠날 준비가 된 것 같다. 이직, 그게 뭐라고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걸까. 


새 직장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이제 반절쯤 겪었다. 아무튼 그간의 마침표를 찍는 오늘은 마음이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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