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사 시험은 거 아무나 보냐고!
제대로 된 면접 한번 가보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어떤 날은 우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집안일도 하기 싫었다. 화장실에 긴 머리카락이 실지렁이처럼 여기저기 징그럽게 흩어져 다니고, 침대 밑에 먼지가 왜,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들이 총싸움을 하기 전 휘잉~하고 바람이 불면 꼭 등장하는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구의 형태를 만들어 굴러 다니는 지경이 될 때까지 꼼짝하기가 싫은 것이었다.
겨우 아이 밥 먹는 것 하나 대충 챙겨주는 것 외에 TV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도저히 다 싫고, 남는 시간 그저 내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고만 있었다. 배가 고프거나 무언가를 먹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었다. 꼼지락 거리기는 싫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뭔가라도 해야 살 거 같았다.
시간의 빈틈을 견디기 힘들었다. 정적을 깨는 씹는 소리라도 들려야 마음이 진정이 되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느는 건 한숨과 몸무게뿐이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기사 자격증이나 따 볼까?
난데없이 관심 없던 기사 자격증 생각이 났다.
나는 4년제 환경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피디나 작가로 진로를 생각할 만큼 교내 방송국 활동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니, 공대 4년 차가 되면 졸업장과 함께 취득하는 게 국룰로 여겨지던 자격증을 단 한 번도 따 본 적이 없다. 시험을 쳐 본 적이 없으니, 기사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턱이 없었다.
어쨌거나 4년째 대학을 졸업했으므로 나는 '기사' 자격증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그래, 자격도 되는데 이거 안 따면 아깝지~
그리고 이거라도 따 두면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자격증을 대여해 주고 대여비를 받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상황이 그렇지는 못하다고 대학 동기들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새 직업을 찾는다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다른 자격증을 따는데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것 보다야 낫지 않을까? 난데없는 기사도_기사 시험으로 향하는 길, 헛._ 정신이 불끈 생겨났다.
그런데, 시작을 하려고 책을 주문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책값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백수 주부에게 3~4만 원은 큰돈이었다. 내가 정말 공부할 수 있을까? 괜히 헛돈 쓰는 건 아닐까?
나는 입으로 무언가를 우걱우걱 씹는 동안, 그 여러 번의 시간이 반복되는 동안 고민했다. 3~4만 원 때문에!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산다 싶던 어느 날, 나는 덜컥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총알같이 책이 배송되었다.
노란 표지의 책은 한 손에 그득하게 잡힐 만큼 두꺼운 몸을 자랑했다. 책도 준비 돼 있겠다. 기사 시험 접수라도 먼저 하면 공부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해서 시험 접수일을 서치 해 봤다.
매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막 2회 차 시험이 한 달 남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험 접수 시기도 며칠 후였고.
공부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속세말로 ‘간 좀 볼 겸’ 시험 한 번 쳐 볼까? 싶었다. 한편으론 접수료가 아까워서 고민이 되기도 했고. 그런데, 유튜브에 4주 만에 필기 합격하기 등과 같은 영상물들이 등장하는 걸 보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드는 것이었다.
필기시험 접수가 시작되는 날 오후, 해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어랏, 접수 마감이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기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았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공부를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새삼스러웠다.
손에 잡히지 않으면 더 가지고 싶은 법. 나는 괜히 접수가 하고 싶어졌다. 며칠 후 빈자리 추가 접수가 있다고 해서 홈페이지에 접속해 봤지만, 역시나 자리는 없었다. 정말 웃겼다. 공부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접수 못한 게 아쉽다.
공부부터 시작해.
누가 그런 말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순간 창피함이 몰려왔다.
나는 누가 볼 것도 아닌데, 책을 포장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계획인데, 혹시라도 아는 이를 마주쳤을 때 ‘자기 기사시험 볼 거야?’라고 물을까 봐, 그럼 나중에 ‘합격했어?’ 말이 뒤따를까 봐. 그때 ‘아니 못했어’라고 해야 할까 봐.
그러니까 나는 시작 전부터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책을 두꺼운 포장지로 감쌌다. 그러고선 나는 도서관에 가질 못했다.
한 해의 마지막 필기시험 접수를 앞두고, 나는 알람까지 맞춰 놓고, 요이땅~ 달리기 전 출발선에 서 있는 마음으로 시험 접수를 시작했다. 와~ 그런데 정말 사람들 총알이다.
집 가까운 장소의 시험은 금세 다 마감이 돼 버렸고, 나는 당황했다. 한두 군데 정도 시험 볼 장소를 물색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 순식간에 시험장이 채워질 줄 몰랐다. 이건 뭐, 코로나 시절 마스크 사는 것 못지않게 초 스피드로 마감이 되는 것이었다. 허. 한번 당한 거 두 번은 안 당할 거라고, 시간 딱 맞춰 들어왔건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시험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클릭 해 보았다. 그러다 평일 오전 일찍 시험이 있는 곳을 찾아내 겨우 하나 예약했다.
이제, 시험공부만 남았다. 나는 4주 만에 기사시험 합격하기 영상 등을 보면서 각오를 다졌다.
아이를 아침 일찍 학교에 보내고 나면, 곧바로 도서관에 갔다. 그런데, 이건 뭐지? 적혀있는 건 글자요, 아무리 눈을 깜박여 보아도, 당최 모르는 용어뿐이다.
나는 공부는 시작하지도 못한 채 단어 찾기에 바빴다. COD, BOD 정도야 기억하고 있었지만, 내가 도대체 대학 시절에 이런 걸 배웠던가 싶을 만큼 용어들이 기억나질 않았다. 머릿속이 도화지여도 이렇게 새하얀 도화지일 수가 없었다. 아니, 4년이나 배웠는데, 검은 점 하나라도 새겨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쩜 이렇게 일도 모를 수가 있지?
그래도 시험접수 해 놓은 돈을 날리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했다. 난 우선 문제를 풀지 말고 개념이라도 일독하기로 했다. 형광펜으로 열심히 밑줄을 쳐 가며 일독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전날 읽었던 개념을 마치 처음 읽는 사람처럼 새롭게 읽게 되었다. 헛.
결론은 어찌 되었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4주 만에 합격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이 빌어먹을 기사도 정신 때문에 괜한 돈만 낭비했다. 책값에 시험 응시료에~ 커피 열 잔은 마셨을 돈을 날려 보내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러게 기사는 아무나 하니~ 4년 동안 배웠던 게 한 달 만에 되새김 질 되리라 생각했니, 그럼 아무개도 다 기사가 됐겠다~ 속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떻게든 백수탈출을 꿈꾸며 시작한 나의 기사 시험 도전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기사가 되겠다 생각했던 잠깐의 꿈은 쓰레기통에나 처박아 버려야겠다. 아울러 전국의 수많은 수험자, 수질기사 시험을 치르고 기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기사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런 똑똑한 사람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