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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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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Apr 06. 2024

부활절, 그리고 아빠 생각.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 있다. 바로 부활절이다. 


지난주가 그날이었는데, 예배 시간 목사님이 마음을 다해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해 논할 때,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게 경이로워서? 죽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감격해서?  


아니 아니. 아직도 '죽음'이란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눈이 흐릿해지며, 흐릿해지는 눈과는 상관없이 선명한 이미지 하나가 내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바로 임종을 맞이하고 숨을 가쁘게 쉬며, 그 살 빠진 가녀린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하트를 크게 그려주던 아빠 모습이다. 


임종면회 연락을 받고 급하게 아빠 집 텃밭에 있는 시금치며 나물을 뜯어다가, 소고기 곱게 체에 내려 죽을 쑤고 있을 때의 그, 주저앉고 싶은 마음 꽉 붙들고 정신줄 놓지 않으려고 입 앙 다물고 있던 때의 내가 떠오르고. 


눈이 뻘겋게, '눈시울이 붉어지다'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란,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러나 덤덤한 척 우리를 맞아주던 병실 안 엄마와, "집밥 가져왔어"라는 나의 말에, 살이 빠져 뼈만 앙상하게 남은 두 손으로 침대 난간을 잡고 벌떡 일어나며 반기던 아빠의 얼굴. 


도저히 오늘은 이별할 것 같지 않던, "먼 데서 왜 왔어, 커피 한잔 해" 하던 당신의 모습. 


아빠, 사랑해~하트 한번 그려줘~


이별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당신에게 차마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남기려는 나에게,  순순히.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엄마와 머리 위로 한쪽씩 손을 올리고 하트를 만들어 주던 모습. 


조카 손을 붙들고, 아프게 자라온 우리 아들을 보며 "형으로써 자리 잘 잡아서 동생 챙겨줘라" 걱정하던 당신.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던, 초점 없지만 불안함 가득하던 그 눈빛. 


한 달을 병실에 갇혀 있으면서도 당신의 성격답게, 깨끗하던 마지막 모습. 코로나 기간이라, 우리에게 허락된 면회 시간이 길지가 않아서. 그리고 당신이 도저히 마지막일 것 같지 않아서.


아빠, 사랑해. 
아빠, 정말 고생 많았어요.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아빠, 잘 가요.


그 말을 전하지 못하고.

바보같이. 


병원 근처 커피숍에 앉아 '아빠가 하늘로 갔다'는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어떤 멍충이의 모습이 생각나서, 가슴을 치고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그 순간이 떠올라서. 


목사님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이야기하는데, 살아나지 못한 아빠 생각에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누가 봤으면 대단한 신앙심이라도 가진 줄 알았겠다. 


참... 돌이켜보면 고단한 당신의 삶이었다. 그런 당신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딸이라서 나도 당신만큼 고단한 인생을 살았다. 아픈 아이를 키우던 내 인생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그래도 아빠의 살가움 덕에, 늘 찾아가면 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빠 때문에 나는 살았다. 


아빠는 꽃 화분 위에 올려놓은 한 스푼의 알알이 비료 같았다. 비를 맞으면 천천히 녹아내려, 힘없던 꽃잎을 빛나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그것에 의지해 햇볕에도, 바람에도, 비에도 굳건하던 꽃이었는데... 나를 살려주던 영양분을 잃은 지금. 내게는, '영생'을 얻으리라~는 종교적 메시지가, 하나도 들리지가 않는다. 


우리는 죽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서로를 알아볼까? 지금 당신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물 바람을 몰고 올뿐.


성찬 예식 때 빵과 포도주를 마시면서도 '우리 아빠 좀 더 살게 해 주시지' 하는 원망의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걸 보니, 나는 아직도 종교인으로서의 신앙심이 제로인가보다. 현생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이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기다리는 당신이 있음을, 믿고 싶으면서도,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당신을 데려간 하느님이 정말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였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부활절. 예수님처럼 아빠가 짠~ 다시 살아났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근심걱정 전혀 없네~


흥얼흥얼 찬송가를 읊어본다. 근심 걱정 굉장히 많은 나의 삶이 노랫말처럼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삶에 노래로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해 본다. 


아빠가, 참 보고 싶던, 부활절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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