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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아빠 기일, 가족사진이 없어 속상했습니다.

추도 예배지에 아빠 사진 합성한 가족사진을 만들어 넣었어요.

by 돌콩

아빠의 4주기 기념일을 앞두고 추도 예배지를 준비하다가, 늘 추석이면 아빠집 앞에서 가족들이 모여 찍는 가족사진 생각이 났다.

온 가족과 아빠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없어서, 항암 들어가기 전 찍어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암'이란 단어의 충격과 공포는 우리를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아빠와의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족사진 한 장 찍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게 참 아쉬워서 해마다 우리는 아빠 없는 아빠집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핸드폰 속에서 차마 접근하지 못했던 아빠 폴더를 큰맘 먹고 열었다. 가족사진에 아빠 이미지를 넣을 생각이었다. 아빠의 전신사진을 찾아보다가, 왜 이렇게 아빠 사진이 없나... 아쉬워하다가... 아빠의 등산 사진, 아빠가 좋아하던 납작모자, 아빠표 선글라스, 사진 속에 담긴 아빠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지는 못하고 휙휙 넘겼다. 아직은... 사진 속 아빠와 눈을 맞추고 함께 할 자신이 없다.


아빠의 전신사진 한 장과, 아빠가 마지막 항암을 하러 들어가기 전 찍었던, 웃는 모습의 아빠 얼굴을 가족사진에 합체했다. 디자인 전공도 아닌데, 요즘 시대 기술이 참 좋다. 별 다른 툴을 다루지 못해도, 미리캔버스 같은 툴 만으로도 합성이 가능하니 말이다.

디테일은 비록 떨어지지만, 그래도 가족사진이 완성됐다. 저 자리에 있는 아빠가... 실물이라면 좋겠다.


다음날 회사 점심시간 프린트를 뽑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콧물, 눈물이 주책이다.


정신 차려 지금 회사야.


아빠와 함께 한 가족사진을 추도 예비지 뒷장에 넣었다.

소중한 예배지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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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를 내고, 기차를 타러 갔다.

역사 내에 있는 빵집을 지나칠 수가 없지.

아빠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은 다를까" 기대를 하며 올라왔다가 "뭘 바라고 왔냐", "항암불가"라는 의사의 냉정한 답변에 실망하고 내려가던 길, 이 빵집에서 사드린 샐러드를 어쩜 그렇게 맛있게 드시던지.

"생전 이런데 파는 이런 거 비싸다고 사 먹지도 못했는데, 우리 하나 사 먹읍시다" 하던 엄마 말이 막 떠오르고, 아빠가 정말 맛있다고...."까짓 거 별일 아니야"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 방금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 같지 않게 씩씩하게 씹고 넘기며 샐러드 한 박스를 금세 드셨지.

그때 그 샐러드와 똑같은 아인 없었지만, 비슷한 과일이 담긴 리코타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참 멀다...

우린 참 집에서 멀리도 나와 산다. 엄마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그 거리를 체감했다.

내 나이가 더 먹으면, 이 마저도 쉽지 않겠구나...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언니 차를 타고, 아빠 집으로 향했다.

고불 고불 산길로 접어들자, 언니와 나는 박하사탕 하나씩을 입에 물었다. 둘 다 멀미가 심해서 아빠 집으로 가는 길이 수월치가 않다.


문 닫는 시각이 임박해 겨우 도착했다.


잘 있었지요. 아빠?


언니는 늘 아빠가 좋아했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나는 아빠 생각하며 산 샐러드 통을 열었다.


저 봐. 사이비 크리스천이라니까.


남편이 놀리며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알아.. 아빠는 이미 천국에 있는 거.... 근데... 그냥... 마음이 그래서 그래... 우리 아빠니까 그러는 거야... 아빠가 못 드시고 돌아가신 게 안타까우니까...


언니와 나는 합창을 했다. 그게 또 웃겨서 피식.


아빠, 집으로 가자!


언니는, 마치 잠든 아빠를 깨워 모시듯, 아빠 영혼을 차에 태우고 엄마 집으로 향한다고 말한다.

웃프다. 그 마음이.




아침부터 장을 보고 올케와 엄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로 저녁상이 가득 찼다.

오늘은 특별히 갈비찜도 올랐다.


아빠가 명절이 되면 갈비찜 해 먹자 말했는데, 식구 수랑 고깃값 생각하면 그게 안되더라... 근데 지금 생각하면 너희 아버지가 잡숩고 싶으셨던 거 같아... 그걸 못해줘서 한이 돼...


엄마는 이제야 갈비찜을 해 드린다며 눈이 뻘게지셨다.


저녁상 앞에서 추도 예배를 진행했다.

신앙이 깊지도 않은데, 어쩌다 내가 늘 추도 예배를 진행하게 된다.

함께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모인 이 시간이 참 애틋하다.


추도 예배지 뒤에 넣어둔 사진은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됐다.

진짜 아빠였으면 좋겠다. 가족사진 하나 찍어뒀어야 했는데....

저마다 아쉬운 마음 가득이다.




배불리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집으로 올라갈 기차를 타러 나왔다.

올해도 울지 않았다. 모두 잘 참았다.

한 번은 모여 펑펑 울어버릴 법도 한데, 가족들 모두 눈물 버튼이 되고 싶지 않아 꾹꾹 참는다.

이것 또한 남을 지독하게 배려하던 아빠에게 받은 유산이다.


벌써 사 년.

눈앞에는 아빠의 미소, 말 한마디, 피부의 감촉까지 생생한데 사 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는 아빠가.

참. 맣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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