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백수가 되었습니다.

생에 첫 퇴직금을 받고 나니, 실업이 실감 납니다.

by 돌콩

아프게, 아픈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를 키우느라 10년이 넘는 경력 단절,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마흔 후반, 나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됐다.


방송작가로 일했던 젊은 시절 경력과, 아이를 키우던 사이 간간이 써 내려간 글들을 좋게 봐준 한 교육 기업의 신문사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됐다.

몸은 비록 늙었으나, 20대의 열정 못지않게 설레고, 욕심내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일했다.

이름도 없는 신문사의 기초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기고를 의뢰했을 때 '까이지'는 않을 만큼의 신문으로 만드는데 2년이 걸렸다. "신문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질을 당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많이 키웠다".


많이들 모르는 신문에 실린 글들이 아까워서 블로그도 운영하였는데, 꾸준한 방문자 수와 뷰 수를 얻어 애드포스트 심사도 통과하고, 첫 수익도 얻었다. 물론, 회사 명의 통장으로.


간섭하는 사람이나 업무 지시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늘어지지 않고, 요령 피우지 않고 일했다.

우린 경험으로, 또 자녀들을 보며 알지 않는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감시하는 사람 없이 공부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려운 일을, 양심껏 해 내며 나름 나인 투 씩스의 근무 시간을 지키려고 했다.


이 돈을 받고 집으로까지 업무를 들고 갈 순 없어.


1년 차가 지났을 때 단단히 결심했다. 어떻게 보면 나름 요령을 피운 게 겨우 업무 시간을 지키는 일이었다.

기획취재 공모전에 덜컥 선정돼서 그 마저도 몇 달 동안 지켜지지 못했지만.


일을 시작하고 2년 3개월이 지난 작년 12월 말.


갑작스러운 퇴직을 권유받았다.

회사가 더 큰 회사와 합병 이야기가 오가면서, 수익이 없는 신문사를 더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요지였다.


"어떻게라도, 어떤 자리에 앉혀 놓을지 고민을 했다"는 임원의 말에

"짐이 되고 싶진 않아요" 라며 순순히 퇴직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간, 알게 모르게 "사람"으로 인한 피곤함을 느끼면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위로금은, 그래서 얼마나 준대?


권고사직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되묻는 사람들의 첫마디가 위로금이었다.

그런 거 말도 못 했다.


사실, 이건 직장 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나에게는 정보 리스트에도 없는 단어였다.

방송작가 시절엔 대부분의 작가들이 프리랜서였고, 일이 끝남과 동시에 퇴직금이니 뭐니 다른 절차 필요 없이 쉬면 되는 거였다. (요즘은 계약 작가들이 많아졌다고 하니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러니 회사 입장에선, 참 손쉬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퇴직 권고를 받은 사람 중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 달 동안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협상한 직원도 있었으니...)

위로금은 "법적 근거는 없다"라고 하더라. 그래도 대부분 근무 기간에 따라 한 두 달 정도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도 한다던데, 여러 이유로 합병을 추진 중인 회사에 위로금을 요구해 봤자 받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말이라도 해 볼까?" 생각이 들었다. 아, 주는 사람이야 몇 푼 안 되는 돈이더라도, 애 학원 한 달을 더 보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임원에게 "나 가난한데.... 위로금 조금이라도 주면 안 될까요?" 한 껏 비굴하게 말했다.

후회스럽다. 못 받을 거 괜히 말해서 서로 민망해졌다. 모든 건 애초에 논의 됐어야 한다.


"언제까지 정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한 달은 필요하다"라고 말할걸 그랬나?

너무 양심적이었다.

권고사직 이야기를 들은 게 12월 둘째 주였고, 크리스마스 즈음까지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간 기고해 준 분들께 파일을 모아 드리고, 2년 동안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혹여나 어찌 될지 모르니 그동안 작업했던 내용들, 연락처, 사진 등을 모으느라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와중에 예정돼 있던 기고들도 받아 빠르게 정리해 올렸다.


12월을 하루 앞둔 30일까지 출근하고, 마지막 하루는 남은 연차로 소진했다.

마지막 출근 날, 6시 땡 하는 순간까지도 자료 정리하느라 쉬지 못했다.


아까웠다. 2년을 달려온 그 시간들이.

"단절"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겠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그렇게, 다시 나를 일하게 해 준 신문과의 인연이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아날로그였던 내가 최신의 AI 기술을 섭렵할 수 있었고, 장롱 면허를 베스트 드라이버(까진 아니지만)가 되게 해 주었고, 돈 걱정 없이 아이 학원엘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30일까지 치열하게 일하고, 31일 새벽 비행기로 아이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겨울의 한라산을 끄응 끙 거리며 오르고, 가슴이 터질 듯 숨을 내뱉으며 고난 속에 나를 놓고 보니, 다시 주어진 휴식의 시간이 그래도 괜찮게 느껴졌다.


정확히 새해 첫날부터 "백수"가 된, 마흔여덟의 나.

열흘 여 지나, 이직 확인서를 받고 처음으로 실업급여 신청도 해 봤다.


2년 전 치열하게 취업을 위해 발버둥 치던 나의 모습에 이제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것 같기도 하다.

내일모레 오십.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아주 많이 늦을 수도, 오히려 적기일 수도 있겠지...


오늘, 생애 첫 퇴직금을 받았다.

정말 실업자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난다.


사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요 며칠 동안, 회사에 출근하듯 서재 방 컴퓨터에 앉아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루틴을 잃고 싶지가 않았다. 게을러지기 싫었다.

조금은 편해져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조급증이 사라지지가 않더라.


다시 제자리.


무엇을 하며 인생 후반을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어떻게든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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