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이 모지란 놈 같으니!
잠자리도 안 하고 기어올라와?
밥을 차려줘도 못 먹으면 떠맥여줘야 먹을 테야?"
갑례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라놓았다.
뒤이어 손바닥이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침실을 울렸다.
한쪽 볼이 붉게 부어오른 정자를 무룡이 등 뒤로 감췄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요. 씨받이며 첩이며, 그런 게 어딨습니까."
"다들 쉬쉬할 뿐이다."
"금화라는 애, 이제 스무 살이라면서요. 그렇게 어린 애를 상대로 무슨..."
갑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네가 내 배에서 나왔다."
무룡의 턱이 굳었다.
"오늘도 여기 기어올라오면, 정자 친정집 보낼 테니 그리 알거라."
문이 쪼개지듯 닫혔다.
그의 눈길이 정자의 뺨에 남은 자국에 머물렀다.
얼굴을 감쌌다가, 이내 품에 안았다.
"미안해..."
"제가 미안하죠..."
"그래도 나는 당신 두고 거긴 안 가."
그 말이 정자의 가슴에 박혔다.
못 하나처럼.
부엌에 내려오자 벌써 갓 지은 밥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자가 켠 적 없는 불, 정자가 만든 적 없는 소리.
금화였다.
"형님, 편히 주무셨어요."
형님.
정자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아침 준비를 왜..."
"형님 돕고 싶어서요."
"어머님이 보시면 노하실 거예요."
금화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냄비 뚜껑을 열어 김을 빼며 말을 이었다.
"어제 무룡 씨가 된장찌개 좋아한다길래 한 번 해봤는데, 간 좀 봐주실래요, 형님?"
무룡 씨.
가장 익숙한 이름이, 그날따라 낯설게 들렸다.
정자가 국자를 들려는 순간, 뒤에서 기척이 났다.
갑례와 무룡이었다.
"된장찌개 좋아하신다길래요. 직접 만들어드리고 싶었던 건데... 형님이 화가 좀 나셔서요."
"심보가 그 모양이니, 들어설 애도 안 들어서나 보구나."
그날, 갑례의 말은 정자에게 닿지 않았다.
무룡을 올려다보는 금화의 시선만 남았다.
정자의 입술이 말라붙었다.
오후 햇살이 거실에 내려앉았다.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던 정자에게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씨받이랑 첩이랑 무슨 차이예요, 형님?"
정자의 멎은 손 앞에 금화의 발끝이 멈춰 섰다.
한 손에 차를, 다른 한 손에는 차받침을 든 채로.
"저는 씨받이예요, 첩이에요?"
정자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금화 씨는 금화 씨죠."
금화가 웃었다. 입꼬리만 아주 조금.
"씨받이에서 첩이 되면...
첩에서... 조강지처도 될 수 있으려나?"
정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모르는 일이잖아요.
제가 아들이라도 낳으면."
그 말이, 정자의 숨을 먼저 끊어놓았다.
정자의 손에 힘이 빠졌다. 걸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화가 몸을 숙여 걸레를 집어 들었다.
"제가 할게요, 형님."
일어서며 정자의 곁으로 한 발 다가왔다.
"조강지처 연습."
숨결이 닿을 만큼.
갑례의 목소리가 울렸다.
"얘. 들어와라."
방문이 열리며 한약 냄새가 번졌다.
갑례는 테이블 위에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그 옆에 붉은 부적 봉투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가져가서 너희 침실에도 넣어놔라. 작은 방에 넣어둔 곳이랑 같은 데다."
"네, 어머님."
돌아서는 순간, 갑례의 말이 등을 멈춰 세웠다.
"집안에 들어온 애 하나 못 다스리면서,
나중에 아이 태어나면 잘 키울 수는 있겠니?"
정자는 부적 봉투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