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선택

되, 물림

by 밤얼음

출근을 앞두고 현관으로 나란히 걸었다.

그의 등을 털던 정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금화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무룡의 신발에 광을 내고 있었다.

약품 냄새가 희미하게 퍼졌다.


"아, 조심히 다녀오세요."


무룡은 고개를 들며 웃는 금화를 시선도 주지 않고 지나쳤다.


"이런 거 불편합니다."


무룡이 정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닫히고서야 금화는 고개를 돌렸다.


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정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침 공기가 발목에 차게 감겼다.


거실 소파에 금화가 앉아 있었다.

무룡의 속옷을 곱게 접으며.

하얀 천 위를 손끝으로 주름 없이 훑었다.


"이리 줘요."


정자가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왜 그러세요, 형님?"

"제 남편 속옷은 제가 해요."


정자는 접힌 것들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플라스틱이 가볍게 부딪혔다.

돌아서려던 순간, 금화의 목소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언제까지, 위층에만 있을 것 같아요?"


정자가 고개를 돌렸다.

금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룡 씨요."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금화가 몸을 일으켜 정자의 옆에 섰다.


"형님, 너무 이기적인 거 아세요?

무룡 씨도... 자기 자식 하나쯤은 보고 싶을 텐데요."


금화는 한 번 숨을 들이켰다.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마세요.

제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되돌릴 수 없는 거였어요."


스치는 바람과 함께, 방문이 닫혔다.

놓친 빨래바구니에서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해는 느리게 올랐다가, 금세 저물었다.

창밖 하늘이 회색으로 가라앉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저녁상이 치워지고 과일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빛깔 좋은 붉은 사과 껍질이 얇게 말려 있었다.


무룡과 갑례, 금화가 과일을 비우는 동안 정자는 말없이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위층에서 가져온 남편의 베개. 새 속옷.

이불을 털고 다시 각을 맞췄다.

하나씩,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창을 닫자, 나풀거리던 커튼도 조용해졌다.


방을 나서며, 무룡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성큼 다가왔다.

정자의 팔을 붙잡고 위층으로 올랐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안방 문이 닫힘과 동시에 무룡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신, 무슨 생각이야."

"오늘... 거기서 주무세요."

"어머니가 또 뭐라 하셨어?"


정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말 한마디에 숨이 조금 놓였다.


"자식... 보고 싶잖아요."


무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리 위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떨렸다.


"되돌릴 수 없는 생각 하지 마."


"어쩌면... 처음부터 돌릴 수 없는 거였어요."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정자의 팔이 천천히 떨어졌다.

무룡의 손과 함께.


창밖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거세진 바람에 창밖에 나뭇잎이 창에 부딪혔다.

바람만 불고, 비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금화의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젖은 앞치마를 말없이 풀었다.

마른 화분에 가득 물을 부어주었다.


갑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생긴 일은,

없던 일로 못 만드는 게다."


다시, 집 안의 모든 불을 껐다.

현관도 잠갔다.


오늘은,

맞물리는 쇳소리가 유난히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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