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새벽 다섯 시. 부엌 불이 켜졌다.
싱크대에서 물이 쏟아졌다.
정자는 쌀을 씻었다.
쌀이 물속에서 천천히 부풀었다.
손가락 사이로 쌀알이 미끄러지듯 흘렀다가 다시 모였다.
손을 물속에 담근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짧은 숨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차가운 물이 손등을 타고 올라왔지만 빼지 않았다.
냄비에 불을 켰다.
검은 불꽃이 바닥을 덮자, 냄비도 함께 떨렸다.
작은 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
침대가 한 번, 낮게 울렸다.
식탁 위에는 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 쓰지 않은 컵. 가장자리에 희미한 입술 자국.
방문이 열렸다. 갑례였다.
슬리퍼가 바닥을 끌며 다가왔다.
"오늘은 고깃국 끓여야지."
정자는 아래장을 열어 새 냄비를 꺼냈다. 뚜껑이 살짝 흔들렸다.
"쟤가 아들을 낳아야 너한테도 좋은 거다."
무룡이 나왔다.
갑례를 보고, 정자를 보고, 잠시 멈췄다.
작은 헛기침.
정자를 향해 발을 내밀자, 갑례가 입을 열었다.
"거사 치르고 나쁜 기운 들이는 거 아니다."
무룡은 못 들은 척 정자의 어깨를 감쌌다.
국자를 쥔 손에서 국물이 차올랐다.
젖은 머리를 털며 금화가 나왔다.
"어머님, 편히 주무셨어요."
갑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정자의 뒤쪽으로도 몸을 낮췄다.
"형님, 일찍부터 고생하시네요."
대답 없는 정자를 보며 갑례가 혀를 찼다.
"이 좋은 날 얼굴로 죽을 쑤는구나."
국자 끝이 냄비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반쯤 풀린 정자의 앞치마 매듭을 묶어주는 무룡의 손길을 따라, 금화의 시선이 움직였다.
"여보, 내 퇴근시간에 맞춰 나와. 오랜만에 외식하자."
금화의 입술 끝이 구겨졌다.
"당분간은 수저도 섞지 말랬더니 외식은 무슨.
일찍 들어와서 금화 곁에 있어야지, 넌."
그 말에 금화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풀렸다.
"물... 드세요!"
무룡을 향해 내민 금화의 손을 그는 그대로 지나쳤다.
계단 위로 발소리가 사라졌다.
아침상을 차려놓고, 정자는 위층으로 올라왔다.
밥그릇을 긁는 소리도 정자를 따라 올라왔다.
문을 닫고, 그대로 기대 섰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걷어 올렸던 소매를 한쪽씩 내렸다.
가슴께에 묻은 붉은 점이 보였다.
고추양념.
손끝으로 문지르자 더 진하게 번졌다.
숙인 고개 끝에 물이 맺혔다.
그저 물에 불은 손으로 얼굴만 문질렀다.
그날 저녁.
정자는 무룡의 속옷을 들고 작은 방으로 내려갔다.
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침대 위에 이미 옷가지들이 놓여 있었다.
"제가 해놨어요."
뒤에서 금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룡 씨 속옷, 이제 제가 챙겨도 되죠?"
정자는 들고 있던 속옷을 내려다본 뒤, 침대 위에 올렸다.
금화가 정리해 둔 옷가지 옆이었다.
방문 너머로 들려온 갑례의 말이 귓가에 박혔다.
"오늘도 사과가 달구나."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그 웃음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어머님!
글쎄, 아주 큰 검은 용이요.
붉은 사과를 물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다시 나타났지 뭐예요."
갑례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고! 내가 무룡이 가졌을 때도 용이 나왔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도,
이상하게 그걸 안 놓더라고요."
"복덩이다, 복덩이야!
금화의 젓가락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화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무룡이 말없이 새 젓가락을 집어
금화 앞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