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식탁 위에 딸기가 놓였다.
두 봉지였다.
"당신, 딸기 좋아하잖아."
무룡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한 채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단에서 벽을 짚었다.
"아... 금화도 조금 씻어주던가."
그 말이 뒤늦게 떨어졌다.
급히 방에서 나온 금화가 계단 쪽을 바라봤다.
이미 비어 있는 계단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아직 불러오지도 않은 배에 손을 얹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 형님. 딸기네요?
안 그래도 아침부터 저희 아기가 딸기 먹고 싶다 했는데."
"앉아 있어요. 금방 씻어줄게요."
정자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 위로 딸기가 떠올랐다.
방문이 열리며 갑례가 나왔다.
겉옷을 걸친 채 발걸음이 빨랐다.
"얘, 나랑 얼른 옆집 좀 다녀오자.
며칠째 연락도 없고. 혼자 있다가 쓰러진 건 아닌지 모르겠네."
갑례는 식탁 위 영양제를 집어 한 움큼, 물에 밀어 넣듯 삼켰다.
"우리 나이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 초상이더라니까."
정자가 손끝을 앞치마에 문대며 끈을 풀었다.
"물기만 털어서 먹으면 돼요."
"그래, 금화 너는 우리 손자만 생각하렴."
현관문이 닫혔다.
집 안 공기가 그 소리에 맞춰 가라앉았다.
금화가 싱크대에 기대 섰다.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천천히 지워졌다.
"마저 해주고 가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금화 얼굴에 옅은 빛이 돌았다.
"이 사람이랑 어머니, 어디 갔어요?"
"옆집 가셨는데, 좀 늦으신대요."
무룡은 금화의 손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렸다.
금화는 무룡 쪽을 힐끗 본 뒤, 배를 감싸 쥐었다.
"아, 배가 왜 이러지..."
숨을 길게 들이켰다가 조절하듯 내쉬었다.
그대로 허리를 굽혀 방으로 들어갔다.
무룡은 계단에 한 발을 올렸다가 멈췄다.
잠시 서 있다가, 방향을 틀었다.
접시에 딸기를 담아 들고 금화의 방문 앞에 섰다.
노크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같이 먹으면 안 돼요?
저랑, 무룡 씨랑... 저희 아기랑."
둘은 마주 앉아 접시를 사이에 두었다.
"무룡 씨, 그거 알아요?"
금화가 낮게 말했다.
"저를 안으셨을 때도 차가웠어요."
접시 가장자리가 살짝 흔들렸다.
"동생들 학비에... 어머니 병원비에, 아버지 도박빚까지...
씨받이가 아니라, 저승받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어요."
딸기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좋아져버렸어요, 무룡 씨가.
안 되는 거 아는데... 자꾸 이상해요 저."
무룡의 손이 무릎 위에서 말렸다.
세게 쥔 채 잠시 굳어 있었다.
그 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아내를 사랑해."
"알아요."
스치듯 닿은 그의 팔을, 금화가 붙잡아 배 위로 끌어당겼다.
"조용히 사라질까도 생각했어요.
이 아이 생기기 전까진요."
무룡의 숨이 짧게 끊겼다.
"처음이에요. 몸도... 마음도. 무룡 씨가."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 뱃속 아이가 무룡 씨 아이라서 좋아요.
무룡 씨를 쏙 빼닮았을 거예요. 분명."
아이.
그 단어가 무룡의 심장에 감겼다.
흔들리던 눈빛이 길을 잃었다.
"이제 도망갈 곳도 없어요.
우리 모두."
숨과 심장 소리만
시계 초침 사이에 걸려 있었다.
금화의 이마가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에 닿았다.
어깨가 작게 떨렸다.
한동안 말없이 금화의 등을 두드렸다.
알면서도 끝내 손을 빼지 못했다.
또 한 번,
작은 방 불이 천천히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