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사과 태몽

되, 물림

by 밤얼음

없던 고추도 만들어서 낳아야지.

딸 낳아서 같이 쫓겨날 거 아니면.


그날의 말이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금화는 침대에 누운 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시큼한 즙이 입안에 퍼졌다.


금화의 손이 잠시 멈췄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머리칼을 정리하고 서랍을 열어 립스틱을 꺼냈다.

붉은색이 입술 위에 번졌다. 너무 진하지도, 너무 옅지도 않게.


잠시 거울을 더 들여다보다가 방을 나섰다. 거실 소파에 무룡이 비스듬히 앉아 신문을 펼치고 있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만 집 안에 낮게 깔렸다.


"어머, 무룡 씨."


옆자리에 앉았다.


"방금... 배에서 뭔가 느껴졌어요."

"배에서? 벌써 느껴질 때인가?"

"만져봐요."


금화는 그의 손을 잡아 배 위에 올렸다.


"잘 모르겠는데..."

"아이참, 이렇게요."


몸을 더 붙이며 다른 손까지 끌어와 겹쳤다.


"그럼 더 가까이 와봐요."


웃음을 띠며 얼굴을 배 쪽으로 끌어당겼다.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느껴지는 거예요."


무룡이 몸을 떼려 하자, 금화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이렇게 볼을 배에다 대면 태교에 좋대요. 편하게 누워봐요."


잠깐 머뭇대던 무룡이 금화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몸을 눕혔다.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잠든 무룡을 내려다보며

금화의 입가가 느리게 풀렸다.

뻐근해진 목을 뒤로 젖혔다가, 다시 내렸다.


그때,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정자가 멈춰 섰다.


"쉿."


금화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무룡 씨 자요, 형님. 저녁 준비, 조금 있다 하세요."


정자는 잠든 무룡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머님, 시간 맞춰 드셔야 해요."

"어머님, 모임에서 드시고 오신댔어요."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금화의 손이 눈에 박혔다.

정자의 입술 끝이 떨렸다.

무룡의 코 끝에서 굵은 숨이 새어 나왔다.

정자는 조용히 등을 돌렸다.


해가 기울 무렵,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아이고,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이만 늙었지, 입들은 청춘이야."


거실을 울리는 갑례의 소리에 무룡이 움찔하며 허리를 일으켰다.


정자가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얘, 밥 차려라."


갑례의 말에 정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어머님, 식사하시고 오신다는 줄 알고..."


갑례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 시어미 밥도 안 챙겨?

집에 먹을 입이 셋이나 있는데."


순간, 거실 공기가 굳었다.


금화가 나섰다.


"그냥 제가 하려 했는데요... 무룡 씨랑 같이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갑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임신한 애나 부려먹고 앉았으니,

삼신이 도와줄 리가 있나."


"죄송해요. 얼른 차릴게요."


정자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뒤에서 갑례가 손을 내저었다.


"됐다. 우린 나가 먹으마."


무룡이 정자의 어깨를 한 번 감싸 쥐고, 갑례의 뒤로 걸음을 붙였다.


"어머니 화 풀어드리고 올게."


그날 저녁

집에는 정자만 남았다.

빈 식탁을 앞에 두고, 빈 의자를 마주했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늦은 밤, 무룡이 베개를 집어 들었다.


"여보, 금화 배가 아프대. 잠깐 내려갔다 올게."


불을 끄고 누웠다.

베개가 다 젖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소리도, 그림자도, 발자국도 없었다.

그 한가운데 푸른빛이 도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가지 끝, 초록빛 사과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스쳤다.

사과가 떨어졌다.

정자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오래전부터 그걸 기다려 온 사람처럼.

사과는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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