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정자는 오랜만에 거울 앞에 오래 마주했다.
빗살 사이로 머리칼을 천천히 넘기며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빗었다. 이미 가지런한 머리인데도, 손길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웃어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가슴 어딘가가 괜히 간질거렸다.
침대에 기대 있던 무룡이 머리맡에 놓인 작은 등을 켰다. 불빛이 번지자, 그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당신, 요즘 좋은 일 있어?"
정자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얼굴이 달라졌어."
그는 손을 깍지 낀 채 뒷목에 받치고 웃었다.
"뭔가 숨기는 얼굴이야."
정자는 몸을 일으켜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누르자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무룡이 켜둔 불빛만 남았다. 이불을 들어 올려 무룡 옆에 누웠다.
잠시 말이 없었다.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였다.
"...여보."
손이 조심스럽게 배 위로 올라갔다.
"우리... 아기가... 온 것 같아요."
방 안이 고요해졌다. 마치 모든 소리가 벽에 붙어 멈춘 것처럼.
무룡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임신했어요."
무룡의 입술이 열렸다가 오므라들었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
"진짜야?"
정자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와... 진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기적이야!"
무룡이 정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자는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여보, 소리 좀 낮춰요."
그래도 웃음은 계속 새어 나왔다.
"어머니한텐... 아직 말하지 말아줘요."
정자는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
"태몽이... 딸이었어요."
무룡이 잠깐 정자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사과를... 품에 안는."
무룡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잠깐의 침묵.
그가 이불을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정자는 숨을 들이켰다. 무룡의 표정은 단단했다.
"딸이든 아들이든... 우리 아이야."
정자의 눈가가 흔들리며 젖어들었다. 무룡이 그녀 쪽으로 몸을 숙여 팔을 뻗었다. 다리와 허리를 받쳐 품에 안아 올렸다.
"아, 맞다. 이제 조심해야지."
다시 내려놓은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정자의 배 위에 내려앉았다.
"당신은 나만 믿어."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문득 겁이 났다.
금화는 하얀 공간에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발 밑으로 사과들이 흩어져 있었다.
붉은 것.
푸른 것.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붉은 사과를 집었다.
손바닥에 묵직하게 차올랐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즙이 터졌다.
이번엔 푸른 사과였다.
끈적한 단물이 손금 사이로 스며들었다.
양손에 사과를 쥐고, 입 안에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더.
더.
그때,
누군가 손을 뻗었다.
붉은 사과를 붙잡았다.
"내 거야!"
금화가 세게 끌어당겼다.
이번엔 반대쪽에서 푸른 사과를 잡았다.
"놔!"
이를 악물었다.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입 안에서 딱딱한 게 걸렸다.
금화는 혀끝으로 그걸 굴렀다.
까만 씨였다.
입 안에 가득 차올랐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