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거즛말

되, 물림

by 밤얼음

'금화는 용이 붉은 사과를 물고 날았다는데, 너는 푸르댕댕한 사과구나. 자식은 어미 팔자 닮는다더니.'


갑례의 말이 발끝까지 내려앉았다.


버스가 멈췄다.

찬바람이 코끝을 찔렀고, 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고향 냄새.

젖은 흙과 눈 덮인 돌담 옆 좁은 길.

발자국 하나 없는 눈길이 산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 끝에

엄마가 누워 있었다.


오래된 천가방을 열었다.

흰쌀밥이 담긴 작은 통.

큰 통에 담긴 식어버린 미역국.

종이컵에 따른 소주 반 잔.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나 낳고... 미역국도 제대로 못 먹었담서..."


목이 잠겼다.


"이제라도 원 없이 드셔, 엄마."


묘 위에 쌓인 눈이 조용히 엄마를 덮고 있었다.

두 손끝으로 눈을 쓸었다.


"눈이...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나..."


숨이 떨렸다.

얼어붙은 풀을 붙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 춥겠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그대로 몸을 기대고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참아온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울음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가 산 곳곳에 메아리쳤다.


다시 돌아온 그 소리가

푸른 치마폭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

엄마 곁에.

정자도, 뱃속 아이도.


해가 기울었다.

푸른 노을 위로 붉은빛이 번졌다. 서서히.


현관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무룡의 손이 날아왔다.


정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차갑게 얼은 두 볼이 붉게 아려왔다.

내려진 시선이 무룡의 손에 닿았다.

작은 여행가방 하나와 접힌 종이 한 장.

그때 금화가 뛰쳐나왔다.


"무룡 씨, 그만해요..."


무룡의 팔을 붙잡으며 시선은 정자를 향해 있었다.

눈은 찌푸린 채 입꼬리만 올라간 얼굴이었다.

그 옆에 처음 보는 남편의 얼굴.


"당신... 그렇게 독한 사람이었어?"


그가 던진 편지지가 공중에서 흔들리며

정자의 발 앞에 떨어졌다.

반쯤 펼쳐진 종이 안쪽에, 금화의 글씨가 빼곡했다.


"금화더러 이 집 나가라 했다며."


짐을 들어 보였다.


"이렇게 짐까지 싸주고."


숨이 거칠게 섞였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모질 수 있어?

당신... 내가 알던 사람 맞아?"


정자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들고 있던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텅 빈 통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룡이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진짜... 놀러 갔다 왔네. 금화 말대로."


잠깐 숨을 삼켰다.


"어머니 밥도 안 챙겨드리고. 당신은... 도시락 싸들고?"


갑례의 방문이 열렸다.


"집안에 사람 잘못 들이면 망조가 낀다더니."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닫혔다.

무룡이 소리쳤다.


"당신이 싸준 금화 짐, 당신 손으로 다시 풀어놔."


금화 발 밑에 짐가방을 던져두고 뒤를 돌았다.

계단을 세게 밟는 소리가 머리 위를 울렸다.

정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방금 들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엉켜 있었다.


금화가 앞으로 다가와 짐가방을 들어 올렸다.


"저는 형님 이해해요. 제 짐은 제가 다시 풀게요."


"내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금화 씨 짐을 내가 언제..."


말이 끝나지 못했다.


"형님."


금화가 낮게 웃었다.


"세상엔 진실만 있는 게 아니에요.

거짓도... 믿으면 진실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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