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힌 독

되, 물림

by 밤얼음

정자는 멍하니 서 있었다.

차가운 감각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푸른색 치마 안쪽이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다.


붉은 피로.


병원에서부터 집까지 무룡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죽은 어미 산소나 쫓아다니니, 애가 붙어있겠냐.

겨우 애 하나 들어서더니, 그것마저 잡아먹었구나."


갑례의 말이 등 뒤에서 꽂혔다.

그 화살이 정자가 걷던 길을 도려냈다.


정자를 부축하던 손은 침대 앞에서 차갑게 떨어졌다.

그는 말없이 옷장을 열었다.

실내복 몇 벌과 속옷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사부작대는 소리가 시린 다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이 그제야 열렸다.


"홀몸도 아니면서, 그 추운 날 거긴 왜 간 거야?"


녹지 않을 얼음처럼 떨어져 정자가 바라보던 눈앞을 막았다.


"당분간 아래층에서 지낼게."


문은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그 사이로 아래층의 목소리가 스며 올라왔다.


"뭐 잘한 게 있다고 미역국을 끓여맥여?"

"어머님, 유산도 애 낳은 거랑 같다잖아요..."

"너는 어린것이, 참 속도 좋구나."


정자는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 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문을 닫고 싶은 마음도, 귀를 막을 힘도 없었다.


곧 계단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금화가 번졌다.


"형님, 입맛 없어도 한 술 뜨셔요."


화장대 의자를 끌어와 침대 옆에 붙였다.

작은 탁자에 쟁반을 내려놨다.


그 위에 놓인 미역국 한 사발.

국 안에 빼곡한 검은 멍들 위로,

마지막 숨처럼 김이 피어올랐다.


"형님?"


"...나가."


짧은 말이었다. 잘려나간 심장처럼.


"저도 형님이 아이 잃은 건 마음 안 좋..."


"당장."


금화가 느긋하게 일어섰다.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다 몸을 돌렸다.

정자를 향해.


"아, 맞다 형님."


정자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닿지 않는 곳에 닿은 채 멈춰 있었다.


"형님, 태몽이 푸른 사과였다면서요?"


금화의 입술이 정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시선을 데리고 웃음이 귓가까지 올라갔다.


"저도요.

저도 꿈에서 푸른 사과를 봤는데..."


말끝이 잠깐 끊겼다.


"제가 다 먹어버렸지 뭐예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정자의 심장도 함께 떨어졌다.


"무룡 씨가 그러던데... 저희 셋, 운명이라고."


금화의 웃음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이불 끝을 겨우 붙들던 손가락이 쟁반을 밀쳤다.

그릇이 바닥을 때리며 굴렀다.

뜨거운 국물이 방 안을 가득 적셨다.


"형님! 저희 아기 놀래요!"


금화는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방문 밖을 힐끔 살폈다.

누가 들을까, 다문 입술이 꿀렁였다.

그 틈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참... 임신한 제가 계단 왔다 갔다 하니까

우리 아기가 좀 힘들대요."


금화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들어왔다.

정자가 무룡과 있던 방으로.

무룡의 손을 잡고.


무룡은 짐을 다시 풀어 서랍 안에 밀어 넣었다.

손이 멈춘 건, 그 옆 칸 때문이었다.

정자의 옷 몇 벌이 차 있던 자리.

그 몇 벌조차 텅 비어 있었다.


손이 허공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금화가 다가왔다.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느릿하게, 허나 질기게.

뱀이 몸을 휘감듯.

풀리지 않을 매듭처럼.


정자는 금화가 쓰던 방 앞에 섰다.

이 방에 처음 들어오던 날이 떠올랐다.

금화를 들여보내던 날.

자기 손으로 남편을 이 방에 들여보내준 날.


낯선 침대에 앉았다.

남편이 낯선 여자와 머물던 자리.


텅 빈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엄마를... 용서하지 마.

그리고...

엄마한테 다시 돌아오지도 마."


상처가 꽃이 되어 가슴에 피었다.

푸르던 빛은 짙어지고,

그 자리에 조용히 독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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