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여자는 담배를 물었다.
바람에 흔들린 긴 머리칼이 갈라진 입술 끝을 스쳤다. 창백한 피부 위로 흐트러진 마스카라가 그늘을 만들었다. 팔을 들자 원피스 끈이 마른 어깨에 미끄러졌다.
어린 얼굴과는 달리 구두 굽은 높았다. 벗은 구두를 한 손에 쥔 채 벽에 등을 기대 쪼그려 앉았다.
인성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눈이 다시 마주쳤다.
"뭘 봐."
말은 칼끝처럼 차갑고 사나웠다.
"담배 피는 년 처음 봐?"
인성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때 골목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빠른, 어딘가 날이 선 걸음.
"야. 신재연."
여자를 부르는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
"어딜 가. 그래봤자 갈 데도 없는 년이."
후줄근한 점퍼, 눈 밑에 짙은 그늘.
벽에 붙은 작은 그림자를, 더 큰 그림자가 삼켰다.
그의 손이 여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담배가 바닥에 떨어지며 연기가 튀었다.
"놔, 이 개새끼야."
여자가 그 손을 뿌리쳤다.
남자의 손이 그대로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입에선 짧은 신음조차 없었다.
여자의 몸이 앞으로 끌려가던 순간, 인성이 그들 사이로 들어섰다.
"그만하시죠."
남자는 인성을 올려다봤고, 여자의 시선도 옮겨갔다.
머리채를 쥔 손이 풀렸다.
"너 뭔데."
"경찰 부르기 전에 그냥 가시죠."
남자는 바닥에 침을 크게 뱉었다.
"너 빨리 들어와라. 어차피 나중에 다시 기어들어올 거."
남자가 등을 돌려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골목이 잠잠해졌다.
인성은 잠깐 망설였다.
"저기... 괜찮으세요?"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짧은 신음이 입 밖으로 새었다.
"안 괜찮으면. 뭐라도 좀 달라지려나."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고, 손에 들고 있던 구두를 바닥에 내던졌다.
발을 구겨 넣듯 신더니 몸을 돌렸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네온빛 아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신재연.
그날 밤 내내 그 얼굴이 인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인성은 평소처럼 약국 셔터를 올렸다.
담배 냄새가 또 스쳤다.
고개를 돌렸다.
어제 그 여자였다.
같은 자리, 같은 벽.
인성은 그 여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인성의 눈에 그 여자는, 페이지를 넘기는 책처럼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약국 문이 열렸다.
유리 문이 크게 흔들렸다.
여자가 서 있었다.
부은 눈, 입술 끝의 피딱지.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멍자국들.
인성의 손에서 약상자 하나가 떨어졌다.
"약... 있어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인성은 서둘러 서랍을 열었다.
"약은 있는데... 병원부터 가셔야겠어요."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인성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 약 말고.
마음 고치는... 그런 약.
안 팔아요...?"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