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무룡의 집안이 갑자기 뒤집혔다.
"무룡아! 애미야!"
갑례가 이불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거실에 있던 무룡과 정자가 급히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
갑례의 눈이 또렷했다.
치매가 온 뒤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눈빛이었다.
이불 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금화년... 금화년이 요새 자꾸 꿈에 나온다."
갑례에게 건네주려면 물잔이 정자의 손에서 굳었다.
무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들 입조심해라."
목소리가 낮아졌다.
"인성이는 절대 몰라야 한다.
지 친어미에 대해."
갑례가 물잔을 낚아채 단숨에 들이켰다.
흘러내리는 물을 손등으로 문대며 이를 악물었다.
"씨받이니 금화니, 그 이름 그냥 묻어둬라.
요즘 세상에 그 일 알려지기라도 하면 네들 자식 앞길까지 망치는 거야."
정자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고, 무룡은 고개를 숙였다.
다시 따른 물잔 안에서 물결이 흔들렸다.
무룡의 손이 정자의 손등을 덮었다.
같은 쪽으로 기운 배처럼.
금화.
그 이름은 이 집에서 금기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집은 금기였다.
집.
엄마.
아빠.
가족.
재연의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말들.
"네, 제가 최선희 씨 보호자 맞는데요."
전화기 너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연의 손이 떨렸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병원 로비의 불빛이 눈을 찔렀다.
발밑이 잠깐 흔들렸다.
급히 뛰던 걸음은 병실 문을 열고서야 멈췄다.
침대 위에 누운 여자를 보는 순간, 몸이 그대로 굳었다.
소독약 냄새가 목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얼굴.
부어오른 눈, 터진 입술.
곳곳에 붙은 거즈들.
하얀 시트 위로 번진 붉은 자국.
"아직도 아빠랑 안 갈라섰어?
내가 그 집 나가랬잖아.
이 꼴 보기 싫어서 집 나온 건데."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말이 쏟아졌다.
"왜 그딴 전화를 받게 해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왜 또 이딴 모습을 보게 하냐고!"
침대 위의 여자는 힘없이 웃었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네."
그 미소가, 그 상처가 너무 익숙해서 재연은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과 너무 닮아 있는.
아니,
자신이 너무도 닮아가고 있는 그 얼굴이.
싫었다.
"우리 딸... 아픈덴 없는 거지...?"
그 한마디에 결국 다리가 풀렸다.
왜 세상은 나를 자꾸 주저앉히는 걸까.
왜 나만 계속 무너져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이제 됐다고 말해줄까.
지금껏 참아두었던 숨을 토해냈다.
억눌러 왔던 울음이
침대 옆에 놓인, 죽어가던 꽃병도 마르지 못하게 했다.
시들어가는 그녀와는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