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화

되, 물림

by 밤얼음

피할 수 없는 소리가, 결국 돌아왔다.


재연의 걸음이 빈소의 문을 넘었다.

인성의 손을 잡은 채.


빈소는 텅 비어 있었다.

재연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영정사진 속,

자신과 너무도 닮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웃음 안에 울음이 가득 찬 얼굴.

금화였다.


"내가 나가서 확인 좀 해볼게."


인성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신재연 씨?"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중년의 여자가 명단을 들고 서 있었다.


"금화 씨 따님 되시죠?"


재연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제가... 딸이 맞나요?"


여자의 손이 서류의 장을 넘겼다.


"센터 처음 오셨을 당시,

남편 분으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습니다.

백금화 씨 남편 분 성함이..."


숨 고르는 듯한 정적.


"신만식 씨.

아버님 맞으시죠?"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갓난아이를 두고 나오셨다 하셨어요.

아이 이름이... 신재연.

본인 맞으시죠?"


조심스럽게 서류가 내밀어졌다.


"적사항 확인 부탁드립니다."


종이 위 숫자들이 잔인할 만큼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아, 그리고."


여자의 손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재연의 어릴 적 모습이 선명했다.


"금화 씨... 아니,

재연 씨 어머님께서 늘 지니고 계시던 거예요."


어머님.

낯선 호칭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른 식구들은 없나요?"


"동생분들이 계시긴 한데... 모든 절차를 시설 측에 위임하셨어요."


여자의 시선이 들고 있던 서류 위로 옮겨졌다.


"그런데...

기록엔 자녀가 두 분이시거든요."


재연의 손에 들린 사진이 기울었다.


"아드님 한 분이 더 계신 걸로 되어 있네요."


사진 속 재연이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


"이름은 남기지 않으셨어요. 사진은 애초에 없었고요.

무슨 사연인진 모르겠지만...

절대 알아선 안 된다고, 엄마 자격 없는 죄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죄인.

지워지지 않은 선택의 이름이었다.


직원의 시선이 금화의 영정사진으로 돌려졌다.


"마지막까지...

자식들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 하셨어요."


그때,

빈소 문이 다시 열렸다.


인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재연의 시선이 그를 지나, 금화의 사진 위에 머물렀다.


웃고 있는 여자.


그 앞에 서 있는 남자.


그 남자 곁에 선 여자.


비밀은 금화가 없는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녀의 바람은 그녀가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금화의 선택은 가장 잔인한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성의 손이 재연의 손을 감쌌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맞물린 손.


그 순간,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빗물이

두 사람이 잡은 손 위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인성이 든 우산이 재연 쪽으로 기울었다.


재연의 떨리는 손이 휴대폰을 찾았다.

통화 버튼이 눌리고, 신만식 세 글자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죽어서까지 자식 발목을 잡네. 넌 그냥 지금처럼, 네 친모는 모르는 척 살면 돼.]


너머로 이어지는 목소리는 이곳보다 더 차가웠다.


[내가 거길 왜 가. 자식 두고 도망간 년, 어디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거 있나 그거나 알아보고 연락해라.]


통화가 끊겼다.

식어버린 손 끝이 힘없이 풀렸다.


며칠째 비가 이어졌다.

그날도 인성은 말없이 재연의 옆에 섰다.


빗물은 금화를 닮아 있었다.

그 소리는 끝내 불리지 못한 이름들처럼 흩어졌다.


인성은 생각했다.

이 여자를 지켜줄 것이라.

가족이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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