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 보이는 얼굴

되, 물림

by 밤얼음

벨이 눌렸다.

오늘따라 굵게 퍼지는 소리에 정자의 손이 어긋났다.


들고 있던 사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붉은빛을 반사하며 느리게 굴러 현관 앞에 멈췄다.


정자의 시선이 그 끝에 닿았다.

그 앞에 발끝이 들어왔다.


하얀 운동화. 깨끗한 흰색.

발끝이 안쪽으로 모였다가 다시 펴졌다.


정자의 시선이 올라갔다.

인성 옆의 재연이었다.

재연이 허리를 숙여 사과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앳된 얼굴의 하얀 피부 위로 문 밖의 햇살이 붉게 번졌다.

붉은 사과와 함께.


정자의 눈동자가 멎었다.

낡은 흰 운동화.

조심스럽게 모아지던 발끝.

아주 오래 전의 어떤 장면.


"...어서와요."

"엄마, 제가 말씀드린 여자친구요."


"신재연입니다."


재연이 수줍게 웃었다.

신문을 내려놓던 무룡의 손이 멈칫했다.


식탁에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공기 속에 침묵이 쌓일 때쯤 정자가 말을 꺼냈다.


"인성이 할머님도 같이 식사하시면 좋은데... 다음에 인사드리는 걸로 해요."


"네, 말씀 편히 낮춰주세요."


"그래요, 엄마. 편히 대해주셔야 재연이도 편하죠. 아버지도요."


무룡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였다.


"누구냐."


방 안쪽에서 느릿한 발소리를 끌고 갑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이 문턱에 걸렸다.


"그..."


갈라진 숨.


"...금."


갑례의 손이 가슴으로 향했다. 거칠게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무룡이 급히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저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와!"


떨리는 손끝이 재연을 찍었다.


"우리 귀한 손자 어딜 데려가려고!!!"


식탁 위 꽃병 유리가 빛을 잘게 일그러뜨렸다.

정자와 무룡이 갑례를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인성이 재연의 손을 감쌌다.


"할머니... 증상이 더 심해지셨나 봐."


방 안의 소란이 가라앉은 뒤, 무룡이 걸어 나왔다.


"오늘 귀한 손님 모셔놓고 미안하게 됐구나. 주말에 다시 날을 잡아보자."


네 사람은 다른 공간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레스토랑.

깨끗하게 정돈된 식탁.

그날과는 다른 공기 속에서 재연은 포크를 들었다.


케일 사이에 섞인 사과 조각.

선명한 붉은 단면.

무룡의 기억을 스친 장면.


검은 용이 입에 물었다던,

붉은 사과.


"혹시..."


망설임이 스친 숨.


"...어머니 성함이."


무룡의 말 뒤에, 재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친어머니.

새어머니.

뒤엉킨 이름들.

입술이 떨렸다.


그때, 인성이 재연의 손을 잡았다.


"최 순자 희자세요."


재연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곧 몸을 일으켰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통로를 가로질러 몸을 돌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뒤를 파고들었다.


"신재연...?"


재연의 걸음이 붙들렸다.


감춘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늦게 돌아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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