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신재연...?"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번졌다.
지나치게 멋을 부린 차림. 광택이 도는 구두. 빈틈없이 넘긴 머리.
죽은 금화도, 새어머니 최순희도 아닌. 한참 어려 보이는 여자를 옆에 세운 남자.
신만식이었다.
"네가 이런 데엔 어쩐 일이냐?"
그의 시선이 재연의 차림을 느릿하게 훑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흰색.
비웃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웬 하얀 원피스? 웨딩드레스라도 입은 줄 알겠네."
뒤에서 인성이 다가왔다.
재연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정중한 목소리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저희 부모님도 계신데... 식사 전이시면 같이..."
인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앞장을 섰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리가 어디냐."
넷이던 자리는, 여섯이 되었다.
신만식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다 상견례 자리처럼 됐네요. 집사람은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있지만."
그의 손이 옆의 여자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세 번째 사람입니다."
의자에서 몸을 세우며 말을 이었다.
"옛말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사내 팔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신만식이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한 십 년 전쯤이었나.
집사람 임신했을 때, 병원에서 아들인지 딸인지도 알려주질 않더군요.
법이 뭐 어쨌대나."
스테이크 위로 천천히 그어지는 칼날.
붉은 결이 조용히 벌어졌다.
"유산한 게 아쉬울 뿐이죠 뭐."
재연의 기억 속에서 오래전 장면이 스쳐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최선희.
배를 감싸 쥔 손.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던 소리.
그 위로 신만식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낳았으면 우리 예비사위처럼 든든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을지도 모를 텐데."
아무렇지 않게 잘린 고기를 입에 넣었다.
질긴 육질이 이 사이에서 천천히 부서졌다.
육즙이 터져 나왔다.
"요즘은 딸이 귀한 세상이니.
제 여식은 시대 하나는 잘 타고난 거죠."
누구도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을 비집은 것 역시 신만식이었다.
"참, 인성 군 태몽은 뭐였습니까?
재연이는 사과였는데."
정자가 시선을 떨군 채 테이블 보를 가볍게 눌렀다.
무룡이 입을 열었다.
"...검은 용이.
붉은 사과를 무는 꿈이었습니다."
신만식의 시선이 재연에게 멈췄다.
"기가 막힌 우연이네요."
재연의 손이 미끄러졌다.
포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연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인성이 먼저 포크를 집어 자신의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 자신의 포크를 재연 앞에 내려놓았다.
옆에 있던 여자가 입을 틀어막았다.
신만식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 이 사람이 임신 초기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에 좀 예민해서, 저희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여자가 신만식의 겉옷을 챙기며 따라 일어섰다.
신만식의 접시는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번들거릴 만큼.
나머지 네 개의 접시 위엔 식은 음식이 그대로였다.
무룡의 손이 아직도 숟가락을 쥔 채 멈춰 있었다.
정자의 시선이 떨어졌다. 휴대폰 위로.
"어머님 오늘 조용하시네요.
연락 없으신 거 보니..."
멀리서 천둥이 낮게 울렸다.
"잘 계신가 봐요."
익숙한 천장.
익숙한 장롱.
익숙한 고요.
방 안 창틀 사이로 빗소기가 스며들었다.
툭.
툭.
일정한 간격.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희미한 숨이 가늘게 흔들렸다.
갑례의 눈꺼풀이 떨렸다.
느리게 움직이는 입술.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