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아빠 하나

되, 물림

by 밤얼음

"알고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금화의 사진이 뒤늦게 손끝에서 기울었다.

뒤집힌 채로.


"일곱 살 때였나."


인성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저 잠든 줄 알고 엄마가 머리 쓰다듬어 주실 때.

그때 들었어요."


정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직도 기억나요.

'친엄마가 아니어도 사랑한다. 우리 아들.'"


인성의 말이 끝난 뒤에도 방 안의 공기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정자의 손이 입가로 올라갔다.

누렇게 바랜 앞치마 천 위로 떨어진 눈물이 번졌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겠구나... 친어머니가."


무룡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만 만지작거렸다.


"아니요."


목소리는 단호했다.


"저한테 엄마는 한 분이에요.

아버지가 한 분인 것처럼."


뒤 집힌 사진 한 장.

인성의 시선이 그 위에 머물렀다.


사진을 주워 봉투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주 깊숙이.


그것을 그대로 손에 쥐어주었다.


정자의 손이 아닌,

무룡의 손에.


"평생, 가지고 계세요."


인성은 봉투에서 손을 뗐다.


"아버지."


무룡의 손목 위에서 초침이 가늘게 떨렸다.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현관 벨이 울렸다.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재연이에요. 같이 여행지 찾기로 해서요."


인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나오세요. 인사는 좀 이따 드리라 할게요."


잠시 후,

재연과 인성의 목소리가 짧게 들리고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사라졌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두 사람의 등에 겹쳐졌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유난히 길게.


문이 열렸다. 낯익은 웃음이 먼저 집 안으로 들이쳤다.


"아이고, 오랜만이죠. 재연이 아빠입니다. 기억하시죠?"


신만식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쿠션이 깊게 꺼졌다.


"여긴 어떻게..."

"재연이가 이쪽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카라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 그는 단추를 잠그며 거실을 훑었다.


"애들은 2층에 있나 보죠?"


가구들, 물건들, 벽지까지. 눈길 하나하나가 가격을 매기듯.


"다름이 아니라 꼭 아셔야 할 게 있어서요."


정자가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냉장고 문이 열렸다.


식탁에 올린 유리잔 2개.

석류즙이 잔 벽을 타고 천천히 차올랐다.


"사실 제 딸이 아닙니다."


주방까지 밀려든 신만식의 목소리에 정자의 손이 멈칫했다.


"저도 처음엔 제 새끼인 줄 알고 많이 예뻐했죠.

우리 재연이를."


곧, 잔 하나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신만식의 손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석류즙이 목구멍 속으로 거칠게 빨려 들어갔다.

울컥이는 목울대.

입가에 번진 끈적한 즙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알고 보니까 집사람이 임신한 상태로 저한테 온 거더라고요."


나머지 한 잔이 무룡의 앞에 놓였다.


"금화 걔가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영악한 걸로 소문이 자자했..."


유리잔 가장자리에서 즙이 넘쳐흘렀다.

정자의 손에서 놓친 쟁반이 발등으로 떨어졌다.


"방금..."


무룡의 목소리가 말을 잘랐다.


"누구라 하셨습니까."


"예? 아, 애엄마 말입니다.

재연이 친모."


날카로운 파열음이 피부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오래전 발등에 새겨졌던 흉터 위로 통증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죽은 사람이지만요, 뭐."


무룡의 손에 들고 있던 봉투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금화의 사진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뒤집히지 않은 채로.


신만식의 시선이 사진 위에 꽂혔다. 웃음기가 서서히 걷혀갔다.


"금화 사진이 왜... 여기에."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졌다.

무룡과 정자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계단 위.

인성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인성의 손을 잡은 채 웃고 있는 재연.

그 얼굴에서 금화가 보였다.


"아빠...?"


무룡을 스친

래 전

금화가 쫓겨나기 전의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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