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인성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거실 바닥.
떨어진 사진 한 장.
무룡을 스친, 오래전 금화가 쫓겨나기 전의 그날 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진 뒤에도 한 곳만은 잠들지 못했다.
금화의 방.
그 안의 무룡.
무룡은 천장을 보며 돌아누웠다.
금화가 이불을 끌어올렸다.
무룡의 품에 기댄 어깨 위로 희미한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형님은 꿈에서도 모르실 거예요."
금화의 웃음 위로 무룡의 숨이 무겁게 덮였다.
"정자는... 다 알아도 모르는 척해줄 사람이야.
...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금화는 무룡의 표정을 살피다 조금 더 깊게 몸을 붙였다.
손이 그의 목선을 타고 내려갔다.
"그럼... 무룡 씨 자식 하나 더 낳을까요."
입술이 귓가에 닿았다.
"이번에는 딸로."
금화가 무룡의 품에 파고들었다.
"당신 닮은 아들, 당신 닮은 딸.
나 그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 평생 자식들 내 품에서 바라보면서..."
무룡의 손이 금화의 등을 쓸었다.
"난 아들 하나면 족해."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눌렀다.
무룡의 손이 금화의 볼을 스쳤다.
이내 그 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차례로 주워 입었다.
계단에 선 무룡의 발이 멈췄다.
"한심한 놈."
갑례였다.
"금화가 이 집에 왜 들어왔는지 잊었구나.
네 아들 인성이. 그게 쟤 역할이다."
묶여 있던 무룡의 발이 움직였다.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 정자는 깨어 있었다.
떨어진 무룡의 셔츠 단추를 말없이 꿰매고 있었다.
"당신, 언제 일어났어...?"
"목이 마른데..."
정자의 손이 멎었다.
시선은 들리지 않았다.
"잠시 다리에 쥐가 나서.
... 풀릴 때까지 바느질 좀 했어요."
손에 들린 실을 말아, 실타래에 바늘을 꽂았다.
바구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제 물 좀 마시고 올게요."
정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룡의 손이 정자의 팔목을 잡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정자가 비쳤다.
한동안 닫혀 있던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나 당신 원망 한 적 없어요.
... 한 번도."
정자의 손이 올라와 무룡의 볼을 감쌌다.
아직 남아있던 온기가 틈을 매웠다.
방문이 닫혔다.
다음날.
대문도 닫혔다.
문 밖에서 금화의 울부짖음이 번졌다.
문 안에서 무룡의 발이 잠시 멈췄다.
끝내 다시 움직였다.
어젯밤 금화의 말만이 빈자리에 남았다.
"무룡 씨 닮은 아들, 나 닮은 딸."
무룡의 품에 안긴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기억을 잠그듯.
계단 위.
"아빠...?"
인성의 손을 잡은 채 웃고 있는 재연.
그 얼굴에서 금화가 보였다.
그리고.
무룡이 보였다.
정자의 시선이 재연에게서 인성, 인성에서 무룡으로 옮겨졌다.
"당신 이름이... 혹시 강무룡...? 그 여자가 말했던."
"나가시죠, 그만."
무룡의 목소리가 날처럼 떨어졌다.
정자가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담았다.
신만식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흘렀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었다.
"우연이 아니라... 기가 막힌 운명이었네."
입꼬리가 비틀렸다.
"오늘은 이만 가죠. 저희 딸 데리고."
신만식의 손이 재연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 손!"
무룡의 목소리가 그 움직임을 잡았다.
"... 아이 팔 좀... 살살 잡으시죠."
숨 끝이 웃음으로 갈라졌다.
"그래야죠. 이 집 며느리 될 몸인데."
시선이 재연 위에 머물렀다.
"딸 같은 며느리."
정자의 무릎에 힘이 빠졌다.
끌려가던 재연의 손목이 낚아채졌다.
인성이었다.
검은 용이,
붉은 사과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