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그날.
금화의 빈소.
영정사진 속, 재연과 너무도 닮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 서 있던 것을, 그때까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가 나가서 확인 좀 해볼게."
문이 닫히던 순간이었다.
낯익은 뒷모습이 빈소를 빠져나왔다.
아버지.
무룡.
센터 직원이 무룡의 곁으로 다가섰다.
"오늘 일찍부터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성의 걸음이 멈췄다.
자연스럽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늘 산책하시던 시간에 금화 씨 만나러 오시길래... 빈소도 그 시간 쯤 오시겠거니 했거든요."
정자의 생일 날도,
매일 이어지던 무룡의 산책이 인성의 뒷머리로 떨어졌다.
"정산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무룡의 모습이 사라지고, 직원이 발을 돌릴 때였다.
"저... 혹시 지금 나가신 분."
"아, 강무룡 씨요?"
직원의 눈빛이 인성을 훑었다.
"고인 분 보호자 되세요. 금화 씨를 처음 저희 센터에 모시고 온 분이요."
"그게 언제..."
"... 20년도 더 됐네요."
그 말이 인성의 모든 시간을 멎게 했다.
빈소에 다시 들어섰다.
인성의 시선이 재연을 지나 금화의 사진 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재연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았다.
재연의 집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자마자 인성은 곧장 핸들을 꺾었다.
집 쪽으로.
갑례의 방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었다.
"할머니."
갑례가 거칠게 소리쳤다.
"누구냐! 내 손자는 어디 가고 엄한 놈이 방문을 열어!"
인성은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갑례의 손을 붙잡았다.
"할머니... 제발...
치매고 나발이고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
숨이 몰아쳤다.
"금화... 백금화라는 분..."
난동을 피우던 갑례의 몸이 굳었다.
"그분 우리 아버지랑...
아니... 나랑 무슨 관계예요."
갑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화년이 우리 인성이 뺏어가려고 왔구나!"
인성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씨받이로 들어온 것이...
어딜 감히 우리 손자 엄마 역할까지 하려 들어!"
묻어두었던 이름이,
숨겨왔던 이 집안의 과거가
갑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부적... 부적 어딨어! 그때 부적을 더 써놨어야 했는데!"
서랍 깊숙이 밀어 넣어 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빛바랜 서류봉투와 사진 한 장이 인성의 발 앞에 떨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인성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계약서.
'백금화'
적혀 있는 이름.
빈소의 영정사진 속 재연의 친어머니.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 여자가 사진 안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현관소리가 났다.
무겁게 처진 장바구니를 든 무룡이 문을 열었다.
그 뒤로, 그 짐을 나눠 든 정자가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
정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 오늘은 산책 안 나가요?"
무룡은 식탁 위에 짐을 내려놓았다.
"... 이제.
산책 갈 일이 없어졌어."
"네?"
"아, 그게..."
말이 잠시 멈췄다.
"장마도 시작이고, 당분간은 집에 있으려고."
인성의 손 안에서 계약서와 사진이 함께 구겨졌다.
다시 펼쳐, 사진 속 여자를 바라보았다.
불러보지 못한 이름.
끝내 닿지 못한 어머니.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장마는 시작되었고, 며칠째 비가 이어졌다.
그날도 인성은 말없이 재연의 옆에 섰다.
빗물은 끝내 불리지 못한 이름들처럼 흩어졌다.
인성에게만 닿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