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물림
끌려가던 재연의 손목을 잡은 인성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시선을 마주치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입술만 잠시 달싹였다. 현관문이 닫히고, 이어 대문까지 닫혔다. 재연과 만식이 떠난 거실은 조용했다.
무룡과 인성의 눈빛이 교차했다.
"억지로 대는 이어졌어도...
물려주는 것까진 하지 마세요, 아버지."
식어버린 공기 속에서 무룡과 인성은,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정자만이 가슴을 움켜쥔 채 아들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그랬듯, 침묵으로.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무룡은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었다.
재연이 있는 집으로, 신만식을 만나기 위해.
딸 재연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뒤에서 정자의 말이 따라붙었다.
"아이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려놔야지. 전부 제자리로."
정자의 시선이 무룡의 등에 닿았다.
짧게 고인 숨이 다시 흘렀다.
"제자리가 어딘데요.
... 그 자리라는 게 처음부터 있었던 걸까요."
손잡이를 잡은 무룡의 손이 잠시 굳었다.
정자는 시선을 떨구지 않았다.
"...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어요."
"우리가 만든 일이니까... 우리가 끝내야지."
골목마다 엔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로의 길을 밀어내고, 각자의 길을 나아가듯이.
그리고.
무룡의 뒤를 따라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이어지고 있었다.
거친 파열음이 골목을 찢었다.
"너 이리 안 와!!!"
골목 끝 집.
문짝이 뜯길 듯 열리며 신만식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선희가 뛰쳐나왔다.
얼굴 위로 번진 붉고 푸른 자국. 온몸에는 검게 짙어진 멍들이, 겪어온 시간을 새겨놓았다.
지워지지 않는 물감처럼.
무룡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 모습 위로 다른 얼굴 하나가 겹쳐졌다.
금화.
가슴 깊숙한 곳이 무너졌다.
"하지 말라고! 아빠 제발!"
뛰쳐나온 재연의 맨발 뒤로, 신지 못한 신발 하나가 문턱에 걸려 있었다.
"나 어릴 때 엄마도 그렇게 패서 쫓아내 놓고... 새엄마까지 그렇게 만들려 그래?"
선희를 쫓던 만식이 돌아섰다.
곧바로 재연의 멱살이 잡혀 올라갔다.
"왜 나한테서... 왜 자꾸 엄마를 뺏어가는 건데!!!"
만식의 손이 올라갔다.
너무도 익숙하게.
"그 손 떼!!!"
무룡의 외침에,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내 딸한테서... 더러운 손 당장 치워."
확인을 위해 온 무룡이 확인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내 딸'이라는 말이었다.
만식의 얼굴에 느린 웃음이 그들 사이를 오갔다.
"금화가 그쪽 닮은 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남겨주고 갔지?"
만식이 멱살을 놓으며 재연을 밀쳐냈다.
균형이 무너지며 몸이 뒤로 흔들렸다.
재연의 눈이 무룡에게 향하는 순간,
그 뒤에 한 사람.
인성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 위로 인성이 떨어뜨린 하얀 상자가 엎어져 있었다. 벌어진 틈 사이로 케이크가 흘러나왔다.
인성과 재연.
시선이 맞닿았다.
그 순간.
경적과 함께 차 한 대가 파고들었다.
골목의 소음이 뒤늦게 되살아났다.
거칠게 멎는 브레이크 소리.
누군가의 비명.
굳어버린 사람들.
재연의 몸이 허공에서 힘없이 꺾였다.
마치 버티고 있던 시간이 끊어진 것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그녀를 삼켰다.
엄마의 품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