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그레고리 커리, 영화에서의 리얼리즘 재현

미셀 공드리 <이터널 션샤인>(2004)

by 호야 Hoya


서론_ 영화에서의 재현 (Representation in Film)


올라푸르 엘리아손(Ólafur Elíasson)은 『세상을 보는 예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허공의 공간에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에 고찰하고 있다. 그의 첫 작품 『Beauty, 1993』은 “눈, 물방울, 조명이 이루는 각도”라는 단순한 요소를 통해 전시 공간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안에 “눈”이라는 구간적 매체가 사라지면 각도는 무력해진다. 이로 인해 고정점이 생기지 않게 되며, 결국 무지개도 사라지게 된다. 이 공간은 전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체적 대상에 의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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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일하게, 그레고리 커리(Gregory Currie)는 영화의 본질을 단순한 시각 이미지의 연속이 아닌, 관객의 인지적 참여를 유도하고 감정과 사고를 구성하는 복합 매체로 정의한다. 따라서 영화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상상하고 해석하는 경험’이다. 그는 영화를 철학적이고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며, 기존 영화이론에서 간과했던 ‘관객의 인지 작용’에 주목하고 있다.


그레고리 커리의 실재론을 탐구하며, 특히 닮음 테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된다.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묘사가 어떻게 지각적 실재론으로 이어지는지, 또한, 영화가 비묘사적 재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시간적 예술로서 영화가 가지는 독특한 특징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영화적 재현의 시간적 속성이 재현된 사건들의 시간적 속성을 재현하는 데 기여하는 시간성c 개념을 도입하여 영화가 시간을 그리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 글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우리의 방식을 깊이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1. 영화 리얼리즘의 핵심: 닮음 테제의 옹호


1.1 닮음 테제의 정합성과 사실성


영화에서의 ‘닮음 테제’란, 영화 이미지가 현실의 대상이나 사건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사실적인 재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회화나 사진처럼 묘사된 이미지는 그 대상과 외형적으로 닮았기 때문에 ‘사실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지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흐름까지 묘사하기 때문에, 현실의 움직임이나 사건의 전개를 더욱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닮음 테제는 영화의 실재론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1.2 앙드레 바쟁의 신화와 닮음 테제에 대한 비판


앙드레 바쟁은 영화의 발명을 가능케 한 사유의 배경을 “자신의 이미지로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욕망”에서 찾았다. 그는 영화를 ‘현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으로 보았고, 따라서 영화는 현실을 닮으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많은 비평가들은 이런 닮음 테제를 비판해왔다. 그들은 영화가 본질적으로 코드화된 언어이며, 문화적 관습과 인공적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화 이미지가 단순히 현실을 ‘닮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영화 리얼리즘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1.3 닮음 테제 옹호와 그에 대한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는 닮음 테제가 여전히 옹호 가능한 이론적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그가 말하는 ‘닮음’은 미학적 스타일이나 연출 방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수준에서의 닮음이다. 즉, 특정한 스타일—예를 들어 롱 테이크(long take)나 딥 포커스(deep focus) 같은 영화적 기법—이 현실을 더욱 실재감 있게 경험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는 특정 스타일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닮음 자체가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주목한다.


1.4 닮음의 철학적 의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닮음이란 단순히 외형적인 유사성이나 ‘진실성(true-to-life)’의 문제가 아니라, 지각과 인식의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볼 때와 그 사람을 실제로 볼 때,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하나는 시각적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해석일 수 있다. 그림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림에서 ‘말’을 본다고 할 때, 실제 말을 보았던 지각적 경험과 연결 지어 인식한다. 즉, 시각적으로 닮았다는 느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징 인식 능력—형태, 색, 위치 등의 요소를 통해—에 기반한 것이며, 이러한 인지가 ‘닮았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2. 재현의 자연적 발생성과 시각적 인지 능력


영화에서의 재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레고리 커리는 인간이 외부 세계를 단순히 ‘보는’ 존재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를 통해 세계 자체를 내부적으로 구성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능동적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능력은 학습이나 교육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며, 인간의 시각 시스템에 본능처럼 내재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재현은 단순한 표현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기본 틀이다. 우리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을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의미화하며, 기억 속에 저장하거나 새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구조화한다.


이러한 시각적 인지 능력은 단지 ‘보는 능력’을 넘어서, 사물을 식별하고 분류하며, 공간을 인식하고 행동을 결정짓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영화라는 매체가 작동하기 위해 전제하는 것은, 관객이 시각적 재현을 인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관객은 단지 화면에 비친 이미지를 수용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구성하고 해석하며, 그 안에서 ‘현실처럼 느껴지는 세계’를 재창조하는 능동적인 인식자인 것이다. 결국, 커리가 말하는 재현이란 단순히 예술 속 기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인지적 조건에 닿아 있는 것이며,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과 깊이 맞닿는 예술 형식이라 할 수 있다.


3. 영화와 비묘사적 재현의 실재론


3.1 비묘사적 재현과 지각적 실재론


영화의 재현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시청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매체이다. 슬픔, 불안, 분노처럼 언어나 이미지로는 명확히 표현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들을, 영화는 빛, 색채, 음악, 카메라 앵글, 인물의 동선과 표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재현해낸다. 이를 ‘비묘사적 재현’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감정을 정서적으로 감지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비묘사적 재현 방식은 영화의 사실성을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사실적이다’라는 말을 외형의 유사성이나 현실과의 닮음을 통해 판단하지만, 커리는 영화의 사실성은 단순한 시각적 닮음이 아니라, 인지와 해석의 방식에 따라 다층적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한 대상이 갖고 있는 복합적 속성 중 일부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시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반면, 나머지 속성은 특정한 기호나 언어적 맥락, 문화적 관습을 통해 해석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떤 재현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할 때, 이는 그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속성을 직접적으로 감지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지 방식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이미지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월하임은 이를 ‘안에-보기(seeing-i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구름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그림 속에서 웰링턴 공작의 형상을 본다고 말하곤 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내면에 가진 인식 체계가 특정한 패턴을 의미화하며 작동한 결과다.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의 표정, 배경 음악, 장면의 조명 등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면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감정과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을 발동하게 되는 것 이다.


이처럼 영화는 지각적 실재론(perceptual realism)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감각하고 판단하게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 이다. 또한, 사운드 영화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을 통해서도 정보를 재현하기 때문에, 하나의 감각적 경계를 넘어서는 복합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영화는 단순한 묘사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언제나 그 이상 —감정, 상징, 분위기, 정서적 뉘앙스 등— 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단순히 보여주는 매체가 아니라, 느끼게 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예술인 이유다.


3.2 예술 형식의 시간성


영화의 실재론을 논할 때, 시간의 문제는 단순한 배경적 요소가 아니라 재현의 본질에 직결되는 핵심적인 질문이 된다. 그레고리 커리는 예술에서 시간성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네 가지 층위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 작품 자체의 시간성이다. 이는 어떤 예술 형식이 본질적으로 시간에 의존하는지를 묻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영화처럼 시간이 지나야만 감상 가능한 예술 형식은 이 층위의 시간성을 강하게 본래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회화나 조각처럼 한눈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예술 형식은 이러한 시간성을 약하게 보유하거나 거의 갖지 않는다.


둘째는 관찰자의 경험으로서의 시간성이다. 이는 관객이나 감상자가 예술작품을 받아들이는 동안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다. 문학, 영화, 음악 등은 감상자가 시간을 따라 이동하도록 강하게 유도하는 반면, 회화는 감상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볼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경험이 덜 구조화되어 있다.


셋째는 작품이 재현하는 내용 속 시간성이다. 즉, 작품 내부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다시 말해 이야기나 사건들이 어떤 시간적 질서를 따르며 배열되어 있는가에 주목하는 층위이다. 이 점에서는 회화나 문학, 영화 모두가 일정한 수준의 시간성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햄릿과 오필리어의 죽음을 시간적으로 배치하며 사건 간의 인과 관계를 보여주고, 니콜라 푸생의 회화 <리날도와 아르미다의 사랑>도 동시적인 두 사건—잠과 응시—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표현함으로써 시간 관계를 재현한다. 회화에서도 시간은 비서사적 방식으로 우회적, 상징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커리는 재현 요소와 시간적 속성 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시간성r’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어떤 예술 형식이 자신의 재현 요소들(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등)을 활용해 얼마나 정밀하게 시간적인 특성을 포착하고 재현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예컨대, 영화는 컷과 숏, 편집, 화면 구성 등을 통해 사건들 사이의 시간 간격, 지속, 반복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필리포 리피의 종교화처럼 회화에서도 공간을 통해 시간적 변화를 암시할 수는 있지만, 영화는 시간 그 자체의 리듬과 질서를 시각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이다. 커리는 이러한 영화의 능력을 통해, 영화가 시간성r을 강하게 본래적으로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단지 ‘시간이 흐르는 작품’이 아니라, 시간을 그 자체로 다루고 구성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작품으로서 시간에 속하고, 관객의 경험 속에서 시간적으로 전개되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의 경과를 재현하고, 더 나아가 재현 수단 자체가 시간성을 설계하고 조직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는 시간적 예술로서 다른 재현 예술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3.3 시간성c: 시간을 통한 시간 재현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가 시간적 예술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 가능한지를 세 가지 차원으로 살펴보았닼 즉, 작품 자체의 시간성, 관객 경험으로서의 시간성, 재현된 내용으로서의 시간성이다. 그런데 커리는 이 세 가지 층위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들 사이의 긴밀한 연관을 통해 보다 정교한 시간 재현의 구조, 즉 ‘시간성c’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시간성c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성립된다. 작품을 구성하는 재현 요소들 자체가 시간적 속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이 재현된 사물이나 사건의 시간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때, 우리는 그 예술 형식이 시간성c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의 작동 방식을 영화의 형식 속에서 재현해내는 방식이다. 커리는 이것이 영화의 진정한 시간성, 즉 영화가 시간예술이 되는 본질적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 개념은 미셸 공드리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을 통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연인의 기억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기억 속 시간들이 편집, 시점, 장면의 붕괴와 중첩을 통해 화면 위에서 뒤엉켜 흐른다. 관객은 이 과정을 통해 단지 시간의 ‘흐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파편화되고 재조립되는가를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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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주인공 조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인물들은 장면의 중심에서 점점 희미해지거나 갑자기 사라지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의 시간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라지는 그 시간적 감각 자체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편집 기법은 ‘장면 간의 이동’을 넘어서, 시간 자체가 불안정하게 작동하는 상태를 직접적으로 구성하는 장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시간성c가 의미하는 바이다.



결국 영화<이터널 선샤인>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야기의 배경이나 구조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어떻게 인식되고 붕괴되며 감각되는지를 영화적 장치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시간성c의 가장 정교한 예시 중 하나가 된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시간을 '담는' 예술이 아니라, 시간을 재현하는 방식 자체를 발명하고 실험하는 예술이기도 한 것이다.


4. 영화의 시간 재현 원리


영화가 다른 예술 형식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을 단지 배경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구조화하고 재현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레고리 커리는 이러한 영화의 시간적 재현을 세 가지 주요한 층위에서 설명한다.


4.1 시간적 관계의 다층적 표현


우선 영화는 이야기 속 사건들 간의 시간적 관계를 복잡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다. 회화에서는 동일한 화면 안에 여러 사건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공간적 구성을 통해 시간성을 암시할 수 있지만, 영화는 장면의 분절과 전환, 숏의 길이와 배열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더욱 명확하고 섬세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필리포 리피의 회화가 깊이 구조나 시선 배치로 시간성을 제안한다면, 영화는 숏과 숏 사이의 배치 자체가 내러티브의 시간 흐름을 설계하는 도구가 된다. 다만, 이 흐름이 언제나 직선적이거나 선형적인 것은 아니며, 플래시백, 점프컷, 시간 왜곡 등을 통해 사건 간 시간 관계는 자유롭게 조작된다.


4.2 디졸브를 통한 시간 간극의 시각화


이러한 시간적 관계의 설계에서 특히 중요한 영화적 기법이 디졸브입니다. 디졸브는 한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른 장면이 덮이는 방식으로,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극(gap)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디졸브가 짧게 사용되면 ‘잠깐 뒤’를 암시하고, 길게 사용되면 보다 긴 시간의 도약을 상징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디졸브의 길이, 타이밍, 반복 패턴 등이 관객에게 시간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커리는 이러한 방식이 단순한 장면 전환을 넘어, 시간 자체의 질감을 시각화하는 장치라고 설명항다. 즉, 영화는 시간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어떻게 인지되고 감각되는지를 연출하는 것이다.


4.3 시각적 기호와 영화적 재현 능력


더 나아가 영화는 기호를 통해 시간적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자막으로 ‘20년 후’라는 문구가 뜨는 경우,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커리는 이러한 기호만으로는 시간의 ‘질’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자막이 몇 초 더 오래 화면에 떠 있다고 해서 그 ‘20년’의 체감이 더 깊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디졸브나 페이드 같은 영화적 언어는 시간의 양뿐 아니라 감각적 거리감, 정서적 밀도까지 함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시간적인 것을 시간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커리가 말하는 ‘시간성c’를 강하게 구현하는 매체가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영화는 관객이 숏의 지속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과 숏이 의미하는 사건의 시간 간격 사이에 일정한 일치(coincidence)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숏이 길게 이어지면 ‘지속된 시간’을 의미하고, 짧은 컷 전환은 ‘빠른 전개’를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기대가 깨진다면—예컨대, 편집 리듬이 지나치게 불규칙하거나 무의식적 시간을 유도한다면—그 영화의 시간성은 관객의 인지 기반 자체를 흔드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커리는 이처럼 시간성c를 구현하는 영화의 특징을 정리하며, 영화는 단순히 ‘시간을 표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시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영화학자 제럴드 마스트(Gerald Mast)의 말처럼, “영화는 가장 참된 시간예술이다. 시간 그 자체의 작동과 가장 밀접하게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 영화의 시간과 공간적 재현의 특성


5.1 시간 재현


영화는 시간성c를 강하게 보유한 예술로, 단지 시간을 배경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구성하고 의미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스크린에서 흐르는 시간은 단선적인 과거-현재-미래뿐만 아니라, 회상, 반복, 플래시백, 몽타주, 디졸브 등을 통해 압축되거나 확장되며, 시간 간극까지 표현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가 사건 간의 인과관계나 감정의 리듬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며, 관객은 영화의 시간적 구조 안에서 내러티브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Gerald Mast의 말처럼, “영화는 시간 그 자체의 작동과 가장 밀접하게 평행을 이루는 예술”로서, 시간을 통해 시간을 재현하지 않을 수 없는 형식이다.


5.2 공간 재현


영화에서 공간은 일반적으로 동일 형상적으로 재현되지만, 회화나 사진과는 달리 자기 동형적이지 않다. 즉, 영화 속 인물의 스크린상 크기는 실제 크기와 일치하지 않으며, 카메라의 거리, 앵글, 렌즈 효과에 따라 상대적이고 조작된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영화 공간은 단순한 현실 복제가 아니라, 관객의 시선과 감각을 유도하는 재구성된 공간이다. 예외적인 경우인 <50피트 여인의 공격>이나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같은 영화들은 크기의 재현 자체를 장르적 효과로 활용하며, 오히려 절대적 공간감의 인식을 전복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5.3 관점적 재현


영화는 공간에 이중적 상대성을 부여하여, 단순히 ‘있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을 제시한다. 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다가올 때, 인물과 배경 사이의 외견상 크기나 깊이 관계가 달라지는 것처럼, 영화는 항상 특정한 관점에서의 공간을 재현한다. 이는 카메라의 위치, 인물의 동선, 시점 숏 등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며,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거나, 전혀 새로운 시점에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다층적 공간감은 영화가 시공간을 관념적으로 구성하는 매체임을 보여준다.


5.4 지각적 실재론


커리는 영화가 지닌 지각적 실재성(perceptual realism)에 주목한다. 이는 영화가 우리의 일상적 지각 방식과 유사한 시공간 감각을 재현함으로써, 관객이 영화 속 세계를 실재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특히 롱 테이크(long take)딥 포커스(deep focus) 기법은 현실에서 우리가 대상을 관찰할 때와 유사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단일 숏 안에서 시간의 지속과 공간의 깊이를 모두 담아냄으로써, 관객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동하고, 장면을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면, 몽타주 스타일은 서로 다른 시공간적 단위를 빠르게 결합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지각보다는 사고와 구조적 해석에 가까운 체험을 유도한다. 두 방식 모두 실재론적 재현을 가능하게 하지만, 지각적 실재론의 강도와 유형은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구현된다.


결론


위 개념의 구조는 영화나 이미지 기반의 작업을 하나의 서사 체계로 접근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레고리 커리의 영화이론은 단순한 시각 이미지의 나열을 보는 기존의 접근과는 상이한 구조를 제시한다. 그는 영화가 관객의 상상력과 인지적 작용 없이 완성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영화는 수동적으로 보는 경험이 아닌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지각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관객이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영화를 함께 구성하는 공동 작업자임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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